앞의 (번)은 새가 날아오르며 뭔가를 뒤집는 행위와 관련이 있다. 아래를 향해 놓인 사물 등을 위로 향하게 바꿔놓는 동작으로 볼 수 있다. 아예 날아오르는 일을 강조할 때는 飜(번)으로도 적는다.

번역(譯)은 언어를 다른 계통의 말로 옮기는 일이다. 다른 이의 작품을 매만져 제 것으로 만들어 내면 번안(案)이다. 번천(天)은 하늘이 뒤집힐 정도의 큰 변화다. 하늘과 땅이 다 뒤집히면 번천복지(天覆地)다.

뒤의 覆(복)은 그 반대다. 위를 향해 있던 것이 아래를 향해 뒤집히는 모양이다. 순우리말의 ‘엎어지다’ 새김이다. 그릇 등의 뚜껑이나 위에서 아래로 덮는 행위를 일컫는 복개(覆蓋), 기울어서 엎어지다가 패망하는 모양을 경복(傾覆)으로 표현하는 경우를 보면 그렇다.

얼굴을 헝겊 등으로 덮는 일이나 그 경우는 복면(覆面)이다. 절연체로 전선 등을 덮어씌우면 피복(被覆)이다. 정상적인 모습이 거꾸로 엎어지면 전복(顚覆)이다. 때로는 ‘다시’를 의미하는 復(복)과 의미가 같다. 복심(覆審)이면 다시 심사하는 일이다.

그러나 아래 위를 따질 겨를도 없이 이 두 글자로 생성한 ‘번복’이라는 단어는 뒤집고 엎는 행위 전반으로 뜻이 그냥 굳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반복(反覆)이라는 단어로도 쓴다. 그냥 뒤집거나 엎어서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이다.

“새 둥지가 엎어지는데 그 안에 있는 알이 온전할까요?(覆巢之下, 復有完卵乎)”라는 유명한 어구가 있다. 언설(言舌)이 아주 날카로워 조조(曹操)에게 미움을 사 끝내 죽임을 당한 공융(孔融)의 둘째 아들이 한 말이다. 제 아버지가 권력자 조조에게 붙잡혀 가니 저도 살아남기 힘들다는 뜻에서 뱉은 푸념이다.

뒤집어 헤치거나 갈아서 엎는 일은 때로 필요하다. 그러나 늘 이어지면 불안정성이 너무 높아진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日暮途遠). 게다가 경제가 침체로 향하는 조짐이 뚜렷한 요즘이다. 우리의 ‘둥지’를 조심히 다뤄야 옳은 시점이다. 나라 안팎의 모든 여건이 불안해지는 상황에서 둥지에 담긴 미래의 동력, 새알을 보전하며 키우기 위해서라면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