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착한 소득격차 확대' 는 축복이다
몸 안에 지방(脂肪) 성분인 콜레스테롤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저밀도 지방 단백질(LDL) 콜레스테롤은 동맥경화 원인으로 작용해 관리가 필요하지만, 고밀도(HDL)는 수치가 높을수록 좋다.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스테로이드 호르몬과 담즙산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세상 이치에는 이와 닮은 게 많다. 소득격차 지표도 그렇다. 흔히 ‘소득격차는 작을수록 좋다’는 말을 당연한 명제(命題)로 여긴다. 최상위 소득자와 최저 소득자 간 격차가 작아야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사회라는 것이다. 새로운 부가가치가 나올 게 없는, 정체된 사회에서는 맞는 얘기다. 사회 전체에서 산출되는 총량이 한정돼 있는데 누군가에게 소득이 쏠리면 다른 사람은 줄어든 몫을 나눠가질 수밖에 없다. 착취와 수탈이라는 표현이 들어맞는 구도다. 옛 농경사회 시절이 그랬다.

창의(創意)와 실행 역량이 있으면 누구든 새로운 사업을 일궈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사회 전체의 부(富) 총량을 넓혀주면서 자기 몫도 늘리는 상생(相生)이 가능하다. 미국에서 석유정제사업을 개척해 엄청난 부자가 된 존 데이비슨 록펠러가 그런 예를 보여준다. 그가 1870년 오하이오스탠더드석유회사를 설립하기 전까지 야간 조명용으로 쓰였던 고래기름과 양초는 부유층만의 사치품이었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캄캄한 밤에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록펠러는 그랬던 미국인의 삶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가 대량 생산한 석유제품을 싼값에 판매한 덕분에 가난한 사람들도 등유를 이용해 야간 조명을 쓸 수 있게 됐다. “미국 서민들이 시간당 1센트의 비용으로 밤에 불을 밝힐 수 있게 됐다. 어두워진 뒤 일하고 독서하는 것이 대다수 미국인의 새로운 활동이 됐다.”(경제사학자 버튼 폴섬)

록펠러라는 거부(巨富)의 탄생은 19세기 후반 미국의 소득격차를 벌려놓았지만, 사회 전체에는 이전에 없던 활기가 돌았다. 사회 전반의 생산성 향상 덕분에 예전 같았으면 엄두를 못 냈을 후속 성공신화가 뒤를 이었다. 헨리 포드는 생산방식 혁신을 통해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열며 엄청난 돈방석에 앉았고, 미국 사회에는 또 다른 활력이 일어났다. 이런 식의 혁신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애플, 구글, 아마존, 넷플릭스, 페이스북 등의 새로운 비즈니스 출현과 함께 신흥 억만장자 탄생으로 이어지고 있다.

모든 나라에서 이런 식의 소득 생태계가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은 곳이 훨씬 더 많다. 포브스가 지난 3월 발표한 ‘억만장자 보고서’에서 640억달러(약 76조8000억원)의 재산으로 세계 부호 순위 5위에 오른 멕시코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은 정경유착을 통한 지대(地代) 편취의 전형으로 꼽힌다. 1990년 정부가 민영화한 국가 독점 통신회사 텔멕스를 헐값에 넘겨받아 재산을 불렸고, 그 대가로 당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했다. 이렇다 할 신산업이 출현하지 않고 있는 멕시코에서 그가 재산을 긁어모은 만큼 다른 국민의 삶이 피폐해진 건 불가피하다. 러시아도 다를 게 없다. 권위주의 정권에 줄을 대 사업 이권을 독과점한 ‘올리가르히’들이 국부(國富)의 대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이 없는 상태에서 정실자본주의가 판치는 이런 나라에서의 소득격차 확대는 당연히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소득격차 축소와 불평등 완화(‘더불어 잘사는 경제’)를 국정과제로 내걸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3년차에 접어든 이즈음, 질문을 바꿔서 해볼 때가 됐다. 대한민국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나가는 사회를 지향한다면 ‘격차’를 보는 시각은 달라질 것이다. 새 사업을 성공시켜 큰 부를 일궈내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빚어지는 격차 확대는 일시적 문제일 뿐이며, 사회 전체적으로 더 큰 후생(厚生)과 활력을 가져다준다. ‘격차 확대’ 타령은 그런 역동성을 찾아볼 수 없고, 도전하지도 않는 나라에서 나온다. 우리나라는 어느 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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