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현 /사진=엔에스씨컴퍼니, 디원미디어
임재현 /사진=엔에스씨컴퍼니, 디원미디어
소리 없는 음원 강자가 또 나타났다.

지난 21일 새벽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인 멜론의 실시간 차트 1위에는 임재현이라는 무명가수의 곡이 이름을 올렸다. 소리바다, 엠넷, 벅스, 지니뮤직 등 다른 국내 주요 음원사이트에서도 마찬가지로 임재현의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은 상위권에 안착했으며 현재까지도 호성적을 거두고 있다.

하룻밤 사이에 등장한 신흥 음원 강자에 리스너들은 의구심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임재현의 1위는 그룹 방탄소년단, 위너, 가수 박효신 등 내로라하는 국내 음원 강자들이 들어선 벽돌 차트를 순식간에 뚫어버린 것이었다. 탄탄한 팬덤을 보유한 아이돌 그룹 역시 음원차트 진입이 쉽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포털사이트에서도 검색되지 않는 아티스트의 낮은 인지도 역시 의문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앨범 활동은 물론, 방송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그의 정체에 대중들의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프로듀서 2soo와 첫 콜라보를 시작으로 이번 데뷔 음반을 발매한 임재현은 서울예대 보컬로서 '왠지 언젠가 역주행 할 것 같은 보컬'픽으로 발라드 마니아들에게 알게 모르게 알려져 왔다"는 소속사의 소개글만이 임재현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이 같은 의문은 결국 사재기 의혹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9월 발표한 곡이 현시점에 이르러 대중성의 영향을 크게 받는 실시간 차트에서 1위라는 역대급 역주행을 이뤄냈다는 점, 대중들이 노래를 찾아 들을 정도로 임재현이 인지도를 가지지 않았다는 점, 새벽 시간대를 이용해 순위가 급격하게 상승했다는 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
임재현 /사진=엔에스씨컴퍼니, 디원미디어
임재현 /사진=엔에스씨컴퍼니, 디원미디어
사재기 의혹이 더욱 거세지자 결국 임재현 본인이 직접 입장을 밝혔다. 임재현은 자신을 서울예대에서 보컬을 전공하는 학생이라 소개하며 "내 노래에 대한 논란은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억울한 부분도 많지만 말을 줄이고 더 좋은 음악을 들려 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임재현은 억울하다고 했지만 사재기 의혹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리스너들이 납득할 수 있는 상황 설명 등이 빠진 단순 입장문이었기 때문. 최근 어떠한 활동으로 음원 순위에 큰 폭의 변동이 온 것인지, 소속사 차원에서 진행한 마케팅 등이 있는지 의혹을 제기하는 부분에 대한 해답은 없었다. 결국 본인이 직접 나서 입장을 밝혔음에도 사재기 의혹은 제자리걸음인 상태다.

일각에서는 임재현의 역주행 이유로 곡의 영향력을 언급했다.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이 유튜브 상에서 커버 곡으로 인기를 얻었고, 노래방 차트에도 상위권에 자리해 있다는 것. 먼데이키즈 멤버 이진성이 그의 노래를 커버하면서 해당 곡이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뇌성마비 크리에이터 역시 이를 부르면서 화제를 모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또한 의혹을 한방에 해소시키기에는 시원치 않다. SNS 상에서의 인기가 음원차트 1위를 거머쥘 정도의 파급력을 지녔는지에 대한 의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임재현의 역주행과 사재기 의혹은 앞서 SNS 마케팅을 이용해 음원차트 1위에 오른 숀, 닐로에 이어 세 번째 같은 패턴으로 벌어진 현상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월 음원 사재기에 대한 조사를 벌였지만 끝내 정확한 사재기 여부를 판단하지 못했고, 그 이후로도 우디 그리고 이번 임재현까지 사재기 의혹은 거듭되고 있다.
닐로, 숀 /사진=각 인스타그램
닐로, 숀 /사진=각 인스타그램
이는 국내 음원 차트 불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부 음악팬들은 '실시간 차트 폐지' 의견까지 내고 있다. 앞서 음원 사재기 시도를 차단하겠다는 취지로 새벽 시간대 실시간 차트를 운영하지 않는 '차트 프리징'을 도입했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계속되는 음원 사재기 의혹이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실체를 알 수 없는 음원 강자들이 등장하면서 리스너들은 알게 모르게 선택의 자유를 빼앗기고 있다. 듣고 싶은 음원과 알고 싶은 가수를 선별할 자유보다는 대중성을 기반으로 한 실시간 차트에 이름을 올린 곡을 우선 선택하게 되기 때문"이라면서 "팬덤층이 두터운 인기 가수 외에 무명 가수와 숨은 명곡들이 발굴되는 것은 좋은 현상일 수 있으나 그 원인에 대해서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차트에 대한 불신이 거세지고 있는 와중에도 주요 음원 사이트들은 어떠한 개선책도 내놓고 있지 않는 실정이다. 1위에 이름을 모르는 가수의 노래가 올라가면 의심부터 하고 보는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문제점을 되짚고 개편하려는 움직임은 전혀 없다. 사재기 의혹 조사를 명쾌히 끝내지 못한 문화체육부 역시 마찬가지다.

개선 의지 없이 손 놓고 있는 이 같은 상황이야말로 같은 문제를 반복하게 만드는 주범일 수 있다. 사재기 의혹의 진상 규명을 위한 관련 업계의 대대적인 자정 노력과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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