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의 이론적 토대를 둘러싼 진보학계와 보수학계 간 논쟁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이번 논쟁은 소득주도성장론자와 현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경제 성장보다 임금 상승이 더디다’는 통계에 허점이 있다는 사실을 보수학계 쪽인 ‘서강학파’(서강대 교수 중심으로 성장을 중시하는 학파)의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가 지난 1일 지적하면서 시작됐다. 이 통계는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등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했다.이에 지난 10일 진보 성향의 ‘학현학파’(분배를 중시하는 학현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를 따르는 학파)가 반격에 나섰다.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성장률 대비 임금 상승률’ 통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조정노동소득분배율(국민소득 중 노동소득의 비중) 통계를 보면 노동자의 임금이 쪼그라드는 건 맞다고 주장했다. 조정노동소득분배율도 소득주도성장의 이론적 토대가 된 통계 중 하나다.그로부터 이틀 뒤인 12일 보수학계의 재반박이 나왔다. 박 교수는 이날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조정노동소득분배율 역시 근본적 한계가 있어서 현실을 왜곡한다”고 지적했다. 노동소득분배율은 국민소득 가운데 자본과 노동이 가져가는 몫을 계산한 것이다. 국민소득엔 기업의 이익·임금뿐 아니라 자영업자 이익이 포함되는데 자영업자 이익은 어디까지가 ‘자본소득(이윤)’이고 ‘노동소득(임금)’인지 구분이 안 돼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가령 혼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한 달에 300만원을 벌었다면 이 중 얼마가 임금이고 이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주 교수는 이런 점을 고려해 자영업 이익을 전부 노동소득으로 분류하거나, 자영업 이익을 법인 부문과 같은 비율로 이윤과 임금으로 나누는 방법을 쓰자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두 가지 분류 방법 역시 과학적 근거에 바탕한 것이 아니라 자의적인 가정에 의한 것이어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박 교수에 따르면 자영업 부문을 제외한 임금근로자 소득 비중만 보는 공식 노동소득분배율은 2000년부터 2017년 사이 57.8%에서 63.0%로 증가했다. 자영업 이익은 같은 기간 22.4%에서 10.4%로 크게 떨어졌다. 박 교수는 “조정노동소득분배율이 떨어진 것은 임금근로자 소득 비중이 감소한 것이 아니라 자영업 이익 비중 감소 때문”이라며 “이처럼 자영업자 소득은 악화하고 기업 부문 인건비 비중은 증가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는 정책은 경영난에 시달리는 자영업에 직격탄이 됐고 법인, 특히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더 키웠다”고 말했다. 통계의 오해에 기반한 정책이 경제 전반에 큰 부작용을 불러왔다는 얘기다.이에 대해 주 교수는 이날 “조정노동소득분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해외 유명 학자들도 사용하는 통계여서 신뢰성을 무작정 부정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소득주도성장의 이론적 토대인 ‘경제 성장보다 임금 상승이 더디다’는 통계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진보 경제학계에서 제기됐다. 그것도 문재인 정부 경제라인의 주축을 이루는 ‘학현(學峴)학파’ 모임에서다. 학현학파는 변형윤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을 따르는 서울대 출신 진보 경제학자들로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 강신욱 통계청장 등이 대표적 인사다.10일 주상영·전수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울사회경제연구소가 주최한 ‘문재인 정부 2년 경제정책 평가와 과제’ 심포지엄에서 ‘한국 경제의 생산성 임금 노동소득분배율’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국내총생산(GDP)과 임금 상승률을 비교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앞서 박종규 청와대 재정기획관은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 시절인 2013년에 낸 보고서에서 “2007년 이후 실질 임금 상승률이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크게 밑돌았다”는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이 분석은 현 정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강력한 이론적 토대가 됐다.수년간 이견 없이 받아들여지던 통계는 지난 1일 보수학계 쪽인 ‘서강학파’의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가 ‘한국 경제의 노동생산성과 임금’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신뢰성에 흠집이 갔다. 논문 요지는 박 기획관의 분석이 ‘물가지수 차이’라는 변수를 간과한 데서 온 통계 해석의 오류이며, 이를 교정하면 임금과 GDP 증가율은 비슷하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주 교수는 “문제의 핵심은 물가지수가 아니라 포괄 범위가 다른 GDP와 임금 통계를 비교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금 통계는 5인 이상 사업장 상용근로자가 대상인 반면 GDP는 5인 미만과 자영업자 등까지 아우르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박 기획관의 분석이 출발부터 잘못됐다고 진단한 것이다. GDP와 임금 통계 간 비교의 위험성은 박 교수도 논문에서 지적한 사안이다. 그는 논문에 “두 지표는 범위가 상당히 달라 비교가 부적절하다”고 썼다.GDP와 임금 통계 비교에 대해 보수·진보학계 모두 신뢰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함에 따라 ‘정부가 부실한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정책을 펼쳐왔다’는 비판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다만 ‘분배 현실을 바로 보기 위해 다른 어떤 통계를 쓸 것이냐’를 두고는 보수학계와 진보학계 간 의견이 엇갈려 향후 ‘2라운드 논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박 교수는 대안으로 “자영업자 통계 등을 빼고 법인 부문만의 소득 배분을 보자”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따지면 기업 이익에서 근로자가 가져가는 몫이 커진다고 봤다.반면 주 교수는 국가 총부가가치 중 피고용자 보수(노동소득)가 차지하는 비중인 ‘노동소득분배율’로 소득 배분을 보자고 제안했다. 노동소득분배율을 보면 한국의 노동소득 비중은 갈수록 쪼그라든다는 게 주 교수의 주장이다.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인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이 우리 경제의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다.”(박정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독일 경제가 2000년대 이후 부활한 비결은 노동개혁 등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 있습니다.”(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낮은 생산성을 방치한 채 임금만 급격히 끌어올린 정책이 여러 부작용을 낳았습니다.”(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9일 한국경제신문사 후원으로 남덕우기념사업회가 연 ‘문재인 정부 2년, 경제를 평가하다’ 토론회에선 정부 경제 정책의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쏟아졌다. 임금 등 소득을 높이는 데 방점을 둔 소득주도성장 대신 경제 전반의 ‘생산성 향상’에 무게를 둔 혁신성장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소득주도성장을 추구하더라도 방법론을 달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영세업체에 부담을 주는 최저임금 인상을 중심에 둘 것이 아니라 정부 재정을 통한 저소득층·청년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주제 발표자로 나선 박정수 교수는 “정부는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는 이론을 토대로 소득주도성장에 속도를 내왔지만 이는 통계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며 “한국 경제의 핵심 문제는 낮은 임금이 아니라 낮은 생산성”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통계청의 10인 이상 제조업 사업체 통계를 분석한 결과 2000~2017년 명목 임금은 138.5% 증가한 반면 명목 노동생산성은 107.1% 늘어나는 데 그쳤다. 국제 비교에서도 한국의 시간당 생산성은 OECD 36개국 중 29위에 그친다는 게 박 교수의 지적이다.박 교수는 “임금 개선을 위해서도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대책이 경제 정책의 중심이 돼야 한다”며 “생산성이 낮은 산업에 집중돼 있는 구조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 규제 개혁, 구조 개혁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 금융 등 생산성이 높은 서비스업과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공유경제 등 신산업 육성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얘기다.이병태 교수는 “생산성을 웃도는 임금 증가는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며 2000년대 유럽 경제를 사례로 제시했다. 2000년대 이후 독일 경제가 부활한 비결을 분석해 보니 생산성 향상이 임금 상승보다 빨랐다는 것이다. 그는 “독일은 노동유연성을 강화하는 하르츠개혁 등을 통해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크게 높이는 데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반면 임금 상승 속도가 더 빨랐던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경제 성장률이 둔화됐다.이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투자·고용의 주체인 기업을 옥죄는 정책을 쏟아내 고비용·저생산성 구조를 악화시키고 있다”며 “이제라도 경제 활동의 자율성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경제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더라도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혁신은 경제의 엔진이고 소득 분배는 변속기”라며 “혁신만큼 소득 분배 개선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지출 여력이 약한 소상공인에게 타격을 주는 것이어서 경제에 큰 부담을 줬다”고 했다. 재정 확대를 통한 저소득층과 청년 지원 등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정민 교수도 “작년 고용 증가율 감소의 약 26%가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이었다”며 “엄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