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오월의 시작
노벨문학상을 받은 T S 엘리엇(1888~1965)은 ‘황무지’라는 작품에서 ‘4월은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lest month)’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는 4월에 유독 가슴 아픈 사건을 많이 겪었다. 멀리는 제주 4·3 사건이 있었고 세월호 참사도 일어났다. 올해는 강원도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해 많은 이재민과 막대한 재산상 피해를 당했다.

길고 긴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봄을 맞는 시점에서 사건과 사고가 많이 생기는 것은 정말 ‘잔인’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건을 통해 고통받은 분들의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선 감히 헤아릴 수 없다. 자신의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식들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심정,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분들의 고통을 어찌 짐작조차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죽음보다 깊은 그들의 상처 옆에서 그들과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같은 나라에서 같은 하늘을 이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다. 공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안전망 개선을 위한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사회적 안전 시스템 미비와 그에 대한 인식의 부족으로 혈육을 잃은 분들을 일반인의 정서에서 고립시키려는 시도도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우리 모두 부족하고도 불완전한 인간 아닌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닥치면 두 발로 땅을 지탱하기도 힘들어하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본인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가 중요하다.

4월이 잔인하고 견디기 힘들다고 해서 달력에서 4월을 없앨 수는 없다. 오히려 해마다 4월을 만나면 겸허한 마음으로 과거의 아픈 사건들을 돌이켜보고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며 유족 곁에서 슬픔을 함께 나누려고 노력해야 한다. 물론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그들의 슬픔을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 곁에 우리가 함께 있어줘야 한다.

4월이 우리에게 준 상처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상처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지점이 국민의 인식과 사회적 시스템을 개선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하루빨리 잊고 싶은 아픈 기억이지만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기억이라면, 일단 받아들이고 그 기억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우리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4월을 살아야 하고 힘들지만 꾸역꾸역 살아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계절의 여왕인 5월을 만날 수 있다. 잔인한 4월을 이겨내고 만난 5월이라 더욱 소중하고 의미 있는 5월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