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아쉬움 남긴 블랙홀 크기 오보
지난 10일 블랙홀 모습이 인류 역사상 처음 공개됐다. ‘경이롭다’ ‘인간이 미물처럼 느껴진다’ 등 반응이 다양했다. 속살을 드러낸 우주의 신비에 사람들이 잠시나마 일상의 시름을 잊은 듯했다.

이번 블랙홀 ‘M87’은 사건지평선망원경(EHT) 팀이 전 세계 거대망원경을 연결해 관측한 결과다. EHT는 미국 하버드·매사추세츠공대(MIT),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등 세계 최고 연구기관의 과학자 200여 명이 모인 블랙홀 탐사 ‘드림팀’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기관인 한국천문연구원도 EHT 제휴기관으로 힘을 보탰다. 그러나 연구성과 발표 과정에서 큰 실수를 했다.

천문연은 10일 “M87의 사건지평선이 약 400억㎞에 걸쳐 드리워진 블랙홀의 그림자보다 2.5배가량 작다”고 발표했다. 사건지평선은 블랙홀의 경계선이다. 이론적으로 이 선을 넘으면 공간이 일그러지고 시간도 역행할 수 있다. 대부분 언론은 “블랙홀 크기가 160억㎞”라고 해석하고 보도했다.

한국경제신문은 국내 언론 가운데 유일하게 블랙홀 크기를 ‘380억㎞’라고 보도(본지 4월 11일자 A2면 참조)했다. 셰퍼드 S 도엘레만 EHT 총괄단장의 자료에 근거해서다. 본지는 천문연에 블랙홀 크기 확인을 요청했다. 천문연은 “영문 번역을 잘못했다. 블랙홀 크기는 380억㎞가 맞다”고 시인했다.

천문연은 12일 오후 “M87 블랙홀의 사건지평선(블랙홀 크기)은 400억㎞에 조금 못 미치며(380억㎞), 블랙홀의 그림자는 이보다 2.5배 정도 크다”고 공식 자료를 냈다. 블랙홀의 그림자는 400억㎞가 아니라 950억㎞(380억㎞의 2.5배)에 걸쳐 드리워졌던 셈이다.

비록 실수를 했지만 천문연은 EHT의 연구성과를 신속히 국내에 전달하는 소임을 다했다. 천문연의 지난해 예산은 653억원이다. 5년 전보다 오히려 줄었다. ‘1조원’ 예산을 눈앞에 둔 서울 구청들과 대조적이다. 기초과학은 기술혁명의 근원이자 국가 발전의 토대다. ‘4차 산업혁명’은 정부가 구호만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강한 한국, ‘스트롱 코리아’를 위해 기초연구기관에 대한 처우가 적절한지 돌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