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업계가 ‘소비자 의뢰 유전자검사(DTC)’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특정 항목만 불허하고 나머지는 전부 허용)으로 바꾸라고 정부에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암 치매 등 중대질환도 검사 항목에 포함해 달라고 요구했다.

DTC 기업들은 “이같은 방식의 규제완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DTC 인증제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배수의 진’을 쳤다.

DTC 기업 모임인 유전체기업협의회(이하 유기협)는 4일 성명을 통해 “DTC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꾸고 중대질병도 검사 항목에 포함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그동안 네거티브 규제 요구는 많았으나 산업계가 성명서를 내며 정부를 압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DTC는 일반 소비자가 병원을 거치지 않고 민간 유전자 검사업체에 직접 검사를 의뢰해 유전적 질환 가능성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국내에서는 2016년 8월 콜레스테롤 혈당 혈압 탈모 등 12개 항목으로 처음 허용됐다.

바이오업계의 대정부 공세…"DTC 규제 네거티브로 전환하고 중대질환 허용하라"
업계에서는 그동안 “허용 항목을 12개에서 더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왔다. 복지부가 이를 받아들여 항목 확대 시범사업을 하기로 하고 지난해 관련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유기협은 “연구용역을 하는 과정에서 전문가 자문회의가 ‘시범사업으로 웰니스 121개 항목을 다루자’고 합의했지만 이후 아무런 논의 없이 복지부가 57개로 대폭 축소했다”며 “각 항목이 왜 제외됐는지 구체적인 설명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유기협은 “복지부는 ‘일단 시범사업을 시작한 뒤 관련 소위원회를 통해 항목 확대 방안을 논의하자’는 입장이지만 이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DTC가 처음 허용되고 2년 10개월이 흐른 현재까지 항목 확대 요구는 구체적 일정 없이 처리가 무기한 연기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복지부는 규제 완화를 위한 구체적인 일정과 타임라인을 밝혀달라”고 못박았다.

유기협은 앞서 지난 2월 복지부의 DTC 시범사업에 대해 “항목 수가 너무 적다”며 보이콧 선언을 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같은 달 규제 샌드박스 시행 방안을 발표하며 마크로젠에게 뇌졸중 위암 파키슨병 등 중증질환 DTC를 허용한 뒤로는 “복지부도 중대질환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복지부는 그동안 물밑 접촉을 통해 “일단 보이콧을 철회하고 시범사업에 참여한 뒤 추후 항목 확대를 논의하자”고 업계를 설득해왔다. 유기협의 이날 성명은 ‘선 규제완화, 후 시범사업 참여’를 못박아 복지부의 이런 요구에 대한 거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복지부는 난처한 상황이 됐다.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중대질환 DTC에 부정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국생위의 결정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이번에 업계가 ‘배수의 진’을 쳤지만 복지부가 자체 결정으로 업계의 요구를 들어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복지부는 오는 10~16일 시범사업 참가신청을 접수할 예정이다. 주요 DTC 업체가 가입한 유기협이 단체로 시범사업에 불참키로 하면서 반쪽짜리 시범사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