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하드가 사라져간다…1700만이 쓰던 '클럽박스'도 폐쇄
2000년대 인터넷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내려받는 서비스로 인기를 끈 웹하드가 생존의 기로에 섰다. 한때 150개 업체가 난립했지만 최근 3분의 1 이하로 업체 수가 줄었다. 정부의 불법 콘텐츠 단속과 더불어 콘텐츠 소비 방식이 다운로드에서 스트리밍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 침체의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6일 국내 스타크래프트 관련 인터넷 카페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14년 이상 운영한 웹하드인 ‘클럽박스’가 급작스럽게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회원들이 올린 스타크래프트 경기 영상이 모조리 삭제됐기 때문이다. 이 중에는 주문형동영상(VOD)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아 구할 길이 없는 오래된 영상도 있었다. 10년 이상 운영을 지속한 연예인 팬클럽이나 애니메이션 관련 인터넷 카페도 같은 일을 겪었다. 네티즌들은 “오래된 자료가 한꺼번에 사라져 무척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클럽박스는 나우콤(현재 아프리카TV)이 2004년 선보인 웹하드 서비스다. 회원 수는 최대 1700만 명(계열사 피디박스 포함), 하루 방문자 수는 100만 명을 넘겼다. 오랜 운영 기간을 토대로 방대한 양의 자료를 보유해 네티즌 사이에서는 “클럽박스에 없는 자료는 한국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클럽박스로 대표되는 웹하드 서비스는 2000년대 초고속 인터넷 보급과 더불어 급격히 성장했다. 주요 업체들의 합계 회원 수만 2008년 2300만 명을 넘겼다. 그러나 음란물, 불법 복제 영상을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장소가 되면서 인터넷의 ‘음지’를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한국저작권보호원에 따르면 웹하드를 통해 퍼진 불법 복제물은 2011년 7억3153만 건에 달했다.

보다 못한 정부는 2012년부터 등록 사업자만 웹하드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웹하드업계의 대표로 꼽히던 나우콤은 불법 복제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같은 해 클럽박스 사업을 제타미디어에 매각했다.

웹하드가 사라져간다…1700만이 쓰던 '클럽박스'도 폐쇄
웹하드 시장은 등록제 도입 이후 지속적으로 쪼그라드는 추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12년 150개 업체(사이트 수 211개)에 달하던 웹하드 시장은 지난 2월 기준 43개 업체(사이트 수 91개)로 대폭 줄어들었다. 서비스 양성화에 따른 가격 상승이 주된 원인이다. 콘텐츠 제작사와 제휴를 맺은 웹하드 사이트는 최소 1000원에서 4000원대 이용료를 받기 시작했지만 ‘공짜’ 콘텐츠를 원하던 이용자들은 웹하드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등록제 시행 후 웹하드를 통해 퍼진 불법 복제물은 2017년 기준 3억3523만 건으로 줄었다.

푹(pooq), 옥수수 등의 동영상 스트리밍(OTT) 서비스가 빠르게 퍼진 것도 주요한 원인이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OTT 시장은 2012년 1085억원 규모에서 2020년 7801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OTT 서비스 업체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편리함과 합리적인 가격을 내세워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통신 속도의 발전과 함께 데이터 이용료가 낮아진 것도 OTT 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하는 이유로 꼽힌다.

지난해 터진 일명 ‘양진호 사태’는 웹하드 시장의 침체를 가속화시켰다. 웹하드 업체들이 불법 음란물 촬영자들과 결탁해 이를 판매하고, 서비스를 쪼개 단속을 피해온 행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1월 관계 부처를 총동원해 웹하드 내 불법 콘텐츠 단속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웹하드 업체와 검색어 금지 필터링 업체 등이 서로 주식·지분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고, 필터링 등을 하지 않으면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전기통신사업법도 개정할 방침이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