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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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22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사진)을 구속하겠다고 나서면서 수사의 칼끝이 청와대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전 장관이 “(산하기관 임원의) 임명 권한이 사실상 내게 없다”고 말한 적이 있는 데다 두 달 전 검찰 조사에서도 ‘윗선 지시를 따랐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이 구속되면 ‘청와대의 입김’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에 관한 수사가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김 전 장관이 산하기관 인사개입

'문 대통령 임명 장관' 첫 영장…檢, 청와대 정조준
서울동부지방검찰청 형사6부(부장검사 주진우)가 이날 김 전 장관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제기한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이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환경부 산하기관 임직원을 표적 감사해 사퇴를 종용했다고 의심한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지난해 12월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검찰 수사관)이 처음 제기했다. 청와대가 민간인을 사찰하고 여권 비위 첩보를 묵살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김 전 수사관은 지난해 12월 26일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퇴 등 관련 동향’ 문건을 공개하며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했다. 문건에는 환경부 산하 8개 기관 임원 24명의 임기와 함께 사표 제출 여부가 기재돼 있다. 문건 상단에는 ‘한국환경공단 외에는 특별한 동요나 반발 없이 사퇴 등 진행 중’이라고 적혀 있어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졌다.

자유한국당은 김 전 장관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고발장 접수 이후 검찰은 올 1월 14일 환경부 감사관실과 한국환경공단을 압수수색했고 청와대가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정황을 포착했다. 사퇴 압력을 받고 물러난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의 후임 선임 과정에서 청와대가 내정한 인사가 1차 서류심사에 탈락하자 공모를 돌연 취소하고 재공모해 여권 인사를 임명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강제수사 초읽기 전망

검찰이 김 전 장관의 소환조사와 압수수색에 이어 구속영장까지 청구하면서 청와대에 대한 수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전 장관이 독자적으로 환경부 산하기관 인사에 개입할 이유가 없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김 전 장관은 지난해 8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출석해 “(산하기관 임원의) 임명 권한은 사실상 내게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난 1월 검찰 소환조사에서도 “윗선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와 여당은 김 전 장관 구속영장 청구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검찰이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을 구속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장관의 인사권과 감찰권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법원 판단을 지켜보겠다”며 “과거 정부 사례와 비교해 균형있는 결정이 내려지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대통령이 임면권을 갖고 있는 공공기관장을 두고 청와대와 해당 부처가 협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며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전례가 없을 뿐 아니라 대통령 인사권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청와대가 재판 가이드라인까지 주는 것이냐”며 “청와대 논평을 보고 법원이 압력을 느끼지 않겠느냐”고 비판했다.

김 전 장관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오는 25일 오전 10시30분 박정길 서울동부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 심리로 열린다.

정의진/배정철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