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평정심 갖고 이성의 명령에 귀 기울여라"
“가장 탁월하고 가장 고결한 로마인.”(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로마제국 제16대 황제이자 스토아학파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를 칭송할 때 흔히 언급되는 말이다. 아우렐리우스는 네르바(재위 96~98), 트라야누스(98~117), 하드리아누스(117~138), 안토니우스 피우스(138~161)와 함께 로마제국 5현제(五賢帝)로 꼽힌다. 서양인에겐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이상적인 지배자로 꼽았던 ‘철인(哲人) 황제’의 표상으로 존경받고 있다.

아우렐리우스의 재위 기간(161~180)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동유럽에서는 게르만족이 라인강을 넘어왔고 브리타니아(영국)에서는 반란이 일어났으며, 소아시아에는 파르티아제국이 쳐들어왔다. 그는 재위 기간 19년 중 13년을 전쟁터에서 보내야 했고, 게르만족을 막다 도나우강가에서 병사했다.

[다시 읽는 명저] "평정심 갖고 이성의 명령에 귀 기울여라"
인간 고뇌가 담긴 자기 성찰록

아우렐리우스는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戰場)에서 당시 교양어였던 그리스어로 삶에 대한 고뇌와 자신에 대한 성찰을 담은 글을 수시로 남겼다. 그렇게 모인 짧은 글이 후대에 모여 ‘스토아철학의 정수(精髓)’라고 평가받는 《명상록》이 됐다. 그리스어 원제목은 《자기 자신에게(Ta eis heauton)》였지만, 영미권에서 《명상록(Meditations)》으로 번역됐다.

아우렐리우스가 《명상록》에서 독백 형식으로 던진 질문은 삶과 인간, 우주 등 만물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다. ‘죽음은 무엇이고, 그 대척점인 삶은 무엇인가’ ‘삶에서 필연은 무엇이고, 우연은 또 무엇인가’ ‘나는 누구이며 행복은 무엇인가’…. 그는 금욕주의, 이성주의, 허무주의, 윤회사상 등이 융합된 스토아철학을 바탕으로 자문자답(自問自答)한다. 후대에서 그의 글들을 인생, 운명, 인간 본성, 자연의 순리, 우주질서 등 12개 주제로 나눴다.

스토아철학에 따르면 모든 욕심을 벗어던져야 행복에 이른다.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선하게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다. 성공과 명성, 부귀영화는 허무하고 덧없다. 《명상록》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해 무한한 우주와 영원한 시간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관조한다. 그런 관조의 결과가 “인간은 ‘선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강력한 윤리적 명령이다.

“수만 년을 살 것처럼 행동하지 마라. 죽음은 항상 너의 머리 위에 머물고 있다. 잠시 후면 너는 모든 것을 잊을 것이다. 잠시 후면 모든 것이 너를 잊게 될 것이다. 인생은 찰나에 머무는 먼지와 같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짧고,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지구의 한 모퉁이에 지나지 않는다.”

아우렐리우스는 성공적인 삶이란 신의 섭리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너를 이 세상에서 몰아내는 것은 폭군도 부정한 재판관도 아닌 너를 세상에 보낸 신이다. 그것은 연출가가 배우를 고용했다가 해고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너는 5막짜리 연극에서 3막까지만 출연했을 뿐이라고 불평하는가. 연극이 끝날 때까지 오늘 정의로웠는지, 의무를 다했는지, 선량했는지 번민하고 또 번민하라.”

아우렐리우스는 ‘운명 결정론’을 신봉했지만 수동적인 운명론자는 아니었다. 인생이 어떤 식으로 결론 지어지더라도 인간의 노력과 ‘자유의지’는 숭고하다고 강조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 자신이다. 내 인생만큼은 남의 시선이 아니라 나의 시선으로 살아갈 자유가 있다. 변화도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과거의 나’를 뜯어고칠 때 변화가 일어난다. 삶을 개선하는 방법은 ‘익숙한 나’와 결별하는 것이다. 얻고자 하면 그만큼 대가를 치러야 한다. 때로는 불편함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우렐리우스는 행복을 얻으려면 감정의 기복을 피하고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감정에 둔해지고, 감정을 끌어들이지 않고,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 삶은 평온해진다.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는 방법은 감정에 둔감해지는 것이다. 감정은 발이 없다. 감정을 일으켜 세우는 건 자기 자신이다. 숨쉬는 동안 평정을 유지하고 이성의 명령에 따라 선(善)을 행하라. 그것이 신이 인간에게 내린 지상과제다.”

"선을 행하는 게 인간 의무"

이런 ‘철학자 황제’도 나약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늘 자신을 경계하고 채찍질했지만 자식에게만은 엄격하지 못했다. 아들 대신 현명한 사람을 황제로 삼는 아우렐리우스 이전 4현제(四賢帝)의 관례를 어겨가며 자신의 아들 콤모두스를 후계자로 삼았다. 로마는 네로에 비견되는 폭군 콤모두스가 피살된 뒤 군인들의 반란이 빈번했던 ‘군인 황제시대(235~284)’에 빠져들었다. 49년간 반란을 통해 황제에 오른 사람만 25명이었다. ‘철인 황제’로 칭송받는 아우렐리우스가 정작 제국의 몰락을 앞당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절대권력자인 황제가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자신을 반성했던 진지한 삶의 자세는 시공을 초월해 인류가 본받을 만하다. 시간이 흘러도 “늘 경계하며 부족함을 이겨내려 했던 한 인간의 치열한 몸부림인 《명상록》의 가치는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