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이 지난해 적자로 돌아섰다. 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건보 수입은 62조1159억원이었던 반면 지출은 62조2937억원에 달해 1778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7년 연속 이어졌던 흑자 행진이 막을 내린 것이다.

건보 재정적자 전환은 예고된 것이었다. 비급여 진료를 건보 재정으로 대폭 지원해주는 ‘문재인 케어’가 지난해부터 본격 시행되면서다. 지난해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복부 초음파, 2·3인실 병실료 등에 잇따라 건보가 적용됐다. 2022년까지 미용, 성형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비급여에 건보가 적용될 예정이어서 적자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작년 말 기준 20조5955억원의 건보 누적 적립금이 있어 당장은 견딜 만하지만, 건보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는 것은 시간문제다. 정부는 2022년까지 건보 적립금 가운데 10조원을 쓰고, 보험료율을 연평균 3.2%로 올려 건보 재정을 충당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건보 재정 악화를 막을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생산 가능 인구의 감소로 건보료 부담 인구는 줄고, 급속한 고령화로 건보 수요는 늘고 있는 마당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이대로 간다면 현 정부 임기 말인 2022년 적립금이 반토막 난 뒤 2026년이면 고갈되고, 2027년엔 적자가 9조9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2023년 임기 이후의 장기적인 재정 추계에 대해선 입을 닫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9월 예정됐던 건보 재정 전망 등을 담은 종합계획 발표를 아직껏 미루고 있다. “첫 번째 계획이어서 수립에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건보 적용 범위를 확대할 때 마땅히 장기 재정 추계 계획과 조달 방안을 함께 내놨어야 했다. ‘내 임기 동안에만 좋으면 된다’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곳간을 헐어 돈을 쓰고, 채울 방법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선심성 포퓰리즘 정책이다. 정부가 의료비 부담 완화라는 달콤한 측면만 강조하고 ‘건보료 폭탄’은 다음 정권과 미래세대에 넘긴다면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