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인들이 재산을 리라화 대신 달러화와 유로화로 바꿔 예금하고 있다. 터키 경제와 리리화에 불신이 크기 때문이다. 터키 은행들이 리라화 예금에 연 21%의 이자를 주고 있지만 극심한 인플레이션 때문에 실질금리가 제로(0) 상태가 되면서 달러화가 자국 통화를 대체하는 ‘달러라이제이션’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터키 은행들에 예치된 거주자들의 예금 중 달러화와 유로화 등 외화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최근 47%까지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터키 기업과 개인들은 작년 9월 이후 약 180억달러(약 20조2000억원)의 리라화 예금을 달러화로 환전해 예치했다.

예금에 대한 실질수익률이 제로 수준으로 떨어진 가운데 리라화 가치가 지난해 급락세를 보인 탓이다. 터키 은행들이 요구불 예금에 대해서도 평균 연 21.1% 이자를 주고 있지만 물가상승률이 20.35%에 달해 세후 실질이자율은 0%다. 터키의 물가가 급등한 것은 달러화 초강세로 수입 물가가 치솟았기 때문이다. 환율이 지난해 초 달러당 3.4리라에서 8월엔 7리라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폭등했다.

터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25%까지 인상하면서 리라화 가치 폭락은 막았지만 연 25.2%를 기록하며 25년 만에 최고치를 찍은 인플레이션은 피하지 못했다. 터키 정부는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선포한 뒤 가스·전기 등 공공요금을 동결하고 국영기업을 동원해 생필품 소매 가격을 통제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이달 들어선 정부가 앙카라와 이스탄불 곳곳에 채소, 과일 판매 차량을 배치해 시장가보다 싼 가격에 식품을 공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20%를 웃돌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러시아제 무기 도입과 시리아 내전 등으로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점도 터키의 경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티모시 애쉬 블루베이자산관리 애널리스트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큰 데다 정부의 가격 통제 같은 반(反)시장 조치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면서 달러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