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前 대법원장
양승태 前 대법원장
검찰이 1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 기소하고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을 불구속 기소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해온 지 8개월 만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에 연루된 판사 100여 명에 대해서는 이달 내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수사 과정에서 비위가 드러난 판사에 대해서는 대법원에 통보해 징계도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정치인들의 재판 청탁 의혹은 내달 수사에 착수한다.

양승태 추가 기소할 듯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양 전 대법원장을 이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공무상 비밀누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전직 사법부 수장으로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재판에 넘겨진 것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도입을 추진하기 위해 무리하게 각종 재판에 개입했고, 대내외적인 비판세력을 탄압하고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부당한 지시를 내렸다고 보고 있다.

296쪽이나 되는 양 전 대법원장 공소장에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민사소송 개입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재판 개입 △법관 사찰 및 인사 보복(판사 블랙리스트)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 등 47개 혐의가 적시됐다. 대부분 판사 간 주고받은 이메일을 통해 증거가 포착됐다. 박·고 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도 공범자로 등장했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공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두 배, 이명박 전 대통령의 네 배에 달한다. 검찰은 이날 임 전 차장을 판사 블랙리스트 가담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세 차례 기소된 임 전 차장에게 적용된 범죄 혐의 가운데 공범 관계인 양 전 대법원장에게 아직 적용되지 않은 것이 많다”며 “증거가 나오는 대로 양 전 대법원장을 추가 기소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양승태 혐의 47개…공소장은 박근혜 2배 분량
다음달 법관 ‘살생부’ 나오나

작년 6월 김명수 대법원장의 수사 협조 결정으로 시작된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는 8개월 만에 이달 마무리될 전망이다. 검찰은 사상 최대인 50여 명의 검사를 투입해 100여 명의 법관을 조사했고, 이달 중 추가 기소 대상 법관을 추릴 방침이다. 다만 책임자들이 대거 기소된 만큼 그 규모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법관들을 또 긴장시키는 것은 검찰의 ‘비위 의혹’ 통보에 따른 징계다. 김 대법원장의 수사 협조로 방대한 법원 내부 자료를 입수한 검찰은 그동안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개별 판사들의 각종 비위 의혹에 대해 늦어도 다음달까지는 대법원에 통보할 계획이다. 대법원은 작년 12월 8명의 비위 의혹 판사들에게 징계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추가 징계는 이보다 큰 규모로 이뤄질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하면서 상당수 법관의 피의자 입건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서영교·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홍일표 자유한국당 의원, 전병헌·노철래·이군현 전 의원 등 재판청탁 의혹이 불거진 정치인 수사도 다음달 본격화될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대부분 출석해 조사를 마쳤지만 서 의원과 노 전 의원은 소환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개입 혐의에 연루된 박근혜 전 대통령,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에 대한 기소 여부도 다음달 결정된다. 법원은 2~3일 내 양 전 대법원장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1심 형사합의 재판부 16곳 가운데 공정성 시비가 일지 않을 한 곳에 배당할 전망이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