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유치전 과열로 정치논리 개입 우려
中 뿌리치려면 국제 경쟁력 유지가 선정 기준
연관산업 밀집, 인재확보 쉬운 입지 우선돼야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김정호 칼럼] 반도체 클러스터, '超격차'만 생각해야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유치전이 과열 상태인 모양이다. 어제도 경북 구미에서 대규모 유치 행사가 있었다지만 알려진 건 없다. 경기 용인과 이천, 충북 청주 등 유치 경쟁에 나선 지역에선 늘 있는 일이라는 얘기다. ‘불꽃 경쟁’이다.

투자가 10년간 120조원이다. 투자는 SK하이닉스가 하지만 정부가 총력 지원하는 사업이다. 고용이 1만 명을 넘는다. 유치전 가열이 당연한 일인 듯싶다.

문제는 후유증이다. 연초 가전 전시회(CES)에 최태원 SK 회장이 참석한다는 소문에 조우(遭遇)를 노린 지자체장들이 앞다퉈 미국 라스베이거스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는 소식은 애교 수준이다. 지자체장들은 일찌감치 청와대와 정부 부처, 여야 정당을 헤집고 다니며 경제 논리로 풀어야 할 일을 정치 논리로 밀어붙이고 있다.

정치로 비화했으니 결론이 어떻든 중앙정부는 중앙대로, 지방정부는 지방대로 상처를 입게 됐다. 정부 내에서 지금이라도 국제 경쟁력만으로 입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자면 클러스터 추진 배경부터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반도체산업이 ‘치킨게임’ 속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최고의 기술력과 선제적 투자 그리고 뛰어난 인재가 있었던 덕분이다. 반도체 고점 논란이 있긴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등 정보기술(IT)산업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어 꾸준히 노력하면 성장 가능성은 여전하다는 산업이다.

겁이 나는 건 중국이다. 정부가 앞장서 대규모 투자로 한국을 따라잡겠다는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무서운 기세다. 클러스터 확보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다행히 삼성엔 부지 문제가 없다. 평택에 90조~100조원의 투자를 버텨낼 여유 부지가 있다. 골치를 앓는 건 SK하이닉스다. 이천 공장의 증설이 사실상 불가능해서다.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자연보전권역에 묶여 있어서다. 신규 부지를 찾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클러스터를 특정 분야에서 경쟁 또는 협력 관계인 기업, 전문 공급업체, 용역업체, 관련 산업 기관이 인접해 있는 결집체로 정의한다. 연관 산업의 지리적 집중이 경쟁의 강도를 심화시켜 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는 기본적으로 반도체 사업장과 장비, 소재 등 관련 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곳에 들어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력 확보도 핵심 요소다. 대기업 고급 인력들이 지방 근무를 기피한다는 건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삼성이 기흥과 화성에 근무하는 반도체 인력을 평택으로 배치했더니 이탈 현상이 빚어질 정도라니 말이다.

서울에서 출퇴근할 수 있는 40㎞가 거리 한계라고 한다. 삼성이 수도권에 있는데 SK하이닉스가 멀리서 새 공장 부지를 찾는다면 인력 확보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조선 3사의 연구소가 바다를 떠나 수도권으로 이사했겠는가. 그게 현실이다. 인텔 같은 세계적 반도체 기업도 수백만 인구의 대도시 인근에 시설을 두고 있다. 용인이 100만 명 인구에 서울이 뒷받침될 뿐 이천(21만 명), 구미(42만 명), 청주(83만 명)에 비할 게 아니다.

때마다 등장하는 국토균형발전론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나 일본, 중국에 대응해 경쟁력을 높이자는데 클러스터를 수도권에 둔다고 지방 살리기에 역행한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 국토 면적의 1.5배인 미국 일리노이주는 1280만 명 주민 가운데 4분의 3인 950만 명이 시카고 주변에 산다. 미국의 한 개 주도 안 되는 땅덩어리에서 균형개발을 이유로 모든 산업을 갈가리 찢는다면 경쟁자들조차 웃지 않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최태원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난 뒤 “알려진 것과 달리 반도체 시장이 희망적이더라”며 “반도체 투자, 공장 증설을 경제수석이 챙겨보라고 했다”고 한다.

반도체가 수출을 먹여 살리고 나라 경제를 먹여 살린다. 반도체가 경쟁력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지금 상태에선 모든 걸 잃게 될 판이다.

오로지 한국이 반도체산업에서 외국 기업과의 ‘초(超)격차’를 어떻게 유지해갈 수 있을지가 판단 기준이어야 한다. 정치적인 판단은 국제 경쟁력을 후퇴시킬 뿐이다. 잘 챙겨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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