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잔치는 끝났다"…中 경기 둔화에 실적 줄줄이 추락
‘차이나 쇼크’가 미국 대표 기업을 포함해 글로벌 기업들을 강타하고 있다. 애플에 이어 엔비디아, 캐터필러 등이 중국 매출 악화를 이유로 실적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 조정하고 있다. ‘어닝 리세션(기업 실적 침체)’이 시작됐다는 경고가 나온다.

반도체 회사인 엔비디아는 2018회계연도 4분기(2018년 10월 29일~2019년 1월 27일) 매출 예상치가 22억달러(약 2조4572억원)로 기존 전망 27억달러보다 18.5%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고 28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경기 악화가 게임용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요에 영향을 미쳤다”며 “4분기는 대단히 비정상적이고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엔비디아는 매출의 약 20%를 중국에서 올리고 있다.

지난주 인텔과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램리서치 등 다른 반도체 관련 회사들도 매출 부진을 중국 경기 둔화 탓으로 돌렸다. 엔비디아 주가는 이날 13.8% 폭락했다. 미국 증권사 번스타인의 스테이시 라스곤 애널리스트는 “중국의 소비가 약화하고 있다”며 “최근 스마트폰에 이어 그래픽카드에서도 그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 잔치는 끝났다"…中 경기 둔화에 실적 줄줄이 추락
중장비업체인 캐터필러는 지난해 4분기 주당순이익(EPS)이 2.55달러(순이익 19억5500만달러)로 당초 예상치인 주당 2.99달러를 크게 밑돌았다. 캐터필러는 “중국 수요가 줄었다”고 밝혔다. 캐터필러 이익이 시장 예상에 미치지 못한 건 2016년 초반 이래 처음이다. 이 회사는 올해 이익 전망도 당초 예상에 못 미치는 주당 11.75~12.75달러로 제시했다. 이날 주가는 9.1% 급락했다.

미국 기업들의 ‘차이나 실적 쇼크’는 지난 2일 애플이 중국 판매 부진을 이유로 분기 매출 전망치를 낮추면서 처음 불거졌다. 다른 기업들도 비슷한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는 점점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포드는 지난 23일 중국에서의 판매 부진(전년 동기 대비 57% 감소)을 이유로 지난해 4분기에 1억106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동공구업체인 스탠리블랙앤드데커는 중국 수요 감소 탓에 올 상반기 실적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페인트업체 PPG도 중국 제조업 경기가 꺼지고 있다며 올 상반기 실적 악화를 경고했다. 증권정보회사 팩트셋에 따르면 이날까지 S&P500 기업의 5분의 1이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한 가운데 이익이 증가세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당초 기대엔 못 미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0년 동안 많은 기업들이 중국의 성장에 투자했다”며 “이제 세계 2위 경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일본 재팬디스플레이도 최근 중국 경기 하강과 미·중 무역전쟁이 매출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발표했다. 독일 폭스바겐의 헤르베르트 디스 CEO는 “중국은 커다란 위협”이라며 “올해 자동차업계가 고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지난해 4분기 이익이 대폭 감소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의 성장 둔화에 따른 파장이 글로벌 기업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차이나 쇼크’ 확산으로 증시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이날 “어닝 리세션이 확산되고 있다”며 뉴욕증시가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1~3분기 미국 기업의 EPS 증가율이 1.3~3.5%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1~3분기에는 증가율이 20%를 웃돌았다. 마이크 윌슨 모건스탠리 수석주식전략가는 “실적 전망치가 계속 낮아지고 있고 펀더멘털은 악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는 향후 1년간 글로벌 기업들의 이익 증가율을 0%로 제시했다. 월가 컨센서스인 6% 증가와 비교하면 말 그대로 ‘쇼크’ 수준이다.

뉴욕=김현석 특파원/이상은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