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저마다의 삶 되돌아보게 하는 '외투의 노래'
겨울철에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중 하나가 푸치니의 ‘라보엠’이다. 이 작품은 시인, 화가, 음악가, 철학자 등 네 예술가의 삶 속에 스며든 꽤나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시인 로돌포에게 행운처럼 찾아온 사랑은 예술가들의 넉넉지 않은 경제 사정으로 인해 지속되지 못하지만 사랑의 마음까지 끊을 수는 없었다. 헤어졌던 여자 친구 미미는 병든 몸을 이끌고 로돌포의 집 앞에 쓰러진다. 친구들이 함께 이끌고 온 미미의 모습은 초췌하기 그지없고 삶의 끝자락이 비친다. 안타까운 순간에 친구 중 한 명인 철학자 콜리네는 입고 있던 코트를 팔아 죽어가는 친구를 도우려고 한다. 이때 자신의 외투를 의인화해 부르는 노래가 유명한 베이스 아리아 ‘외투의 노래’다.

“내 신실한 친구여, 이제 들어보게! 너를 좀 더 좋은 곳으로 떠나보내려고 하네. 내 진심을 알아줬으면 한다네. 부나 권력 앞에서 네 등을 굽힌 적이 없고, 네 주머니 안에서 거장들의 시와 철학이 안식을 취했었지! 이제 우리 행복했던 시간을 보내고 너를 다른 곳으로 또한 보내니…. 잘가게, 내 오랜 친구여!”

오랜 세월 자신의 체온을 지켜주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살붙이가 돼 줬던, 그리고 함께 철학을 나눴던 외투를 전당포로 보내는 주인의 마음이 꽤 아련했을 것 같다. 외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친구이자 주인의 체온을 지켜주는 임무에 충실했을 뿐 아니라 찬바람이 불면 더욱더 옷깃을 여미며 주인과 함께 지냈다. 외투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있었는데 이별이라니. 하지만 이별의 순간에도 외투는 다른 곳에 가면 주인이 더욱 값지게 자신을 사용할 수 있다고 이해했을 것이다. 주인과의 관계 안에서 또 다른 사명을 기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20여 년 전에 읽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좀머씨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 본다. 외투를 여미고 늘 중얼거리며 걷고 있는 좀머 아저씨의 이미지가 선명하다. 사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좀머 아저씨가 아니라 아저씨를 바라보는 소년이다. 소년이 성장하면서 겪는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도 문득문득 좀머 아저씨는 끊임없이 외투를 여미며 걷고 있다. 좀머씨에게 말을 걸려고 하면 그는 “나를 제발 내버려 두시오”라고 말하면서 시간속을 걷는다. 한 번은 억울하게 당한 피아노 선생님의 성화와 부모님의 꾸중으로 불합리와 진실을 외면하는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자살을 결심할 때도 어김없이 좀머 아저씨는 외투를 여미고 걷고 있었다. 그것을 본 소년은 자신의 상처로 삶을 포기하려고 한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소년이 성장해 더 이상 소년이 아닌 때에도 좀머 아저씨는 외투를 입고 그렇게 걷고 있었다. 그런 그도 언젠가 죽음의 시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어른이 된 소년은 자신을 좀 내버려 두라던 좀머 아저씨의 말을 수용하고 그가 걷는 길을 바라만 본다. “날 좀 내버려 두라”며 걷는 좀머씨의 외투는 우리의 고독한 시간이다. 철학자의 외투는 우리 삶의 사명감이다.

우리는 누구나 똑같은 시간을 누리거나 보내고 있다. 그 시간 안에서 삶을 지키는 인간으로서의 사명감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각자 자신을 감싸는 시간속에서 자신의 사명감을 지켜간다면 올 한 해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지낼 만한 시간이 될 것이다. 벌써 올 한 해의 첫 달이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