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 선생(왼쪽)에게 대패질을 배우고 있는 이우상 기자.
백만기 선생(왼쪽)에게 대패질을 배우고 있는 이우상 기자.
“숫돌로 대팻날을 갈 때는 파지법과 요령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깨너머로 쉽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검지로는 80의 힘을 줘서 날을 누르고, 약지와 소지(새끼손가락)는 반대로 살짝 날을 들어 (위로) 올려줘야 해요. 이때 주는 힘이 20. 그래야 날이 한쪽만 갈리지 않고 골고루 갈립니다.”

백만기 선생(53)은 짜맞춤 가구에 대한 인터뷰를 하다 말고 나를 작업장으로 이끌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해보는 게 낫다고 했다. 재킷 벗을 새도 없이 어느새 내 손에는 대팻날이 들려있었다. 백 선생은 “이 정도 힘으로 눌러야 한다”며 손을 지그시 눌렀다. 과장을 조금 보태 황소가 밟은 것 같은 힘이 전해졌다. 백 선생은 무형문화재 소목장 고(故) 조석진 명장의 제자다. 그는 인천 부평에서 짜맞춤전수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선 못 없이 나무만 가지고 가구를 제작하는 전통 짜맞춤 기술을 배울 수 있다.

정밀함이 생명인 짜맞춤 가구

대패질하며 0.01㎜와의 승부…'나만의 가구'는 그렇게 탄생했다
백 선생에게 이것저것 묻다 알게 된 뜻밖의 사실 한 가지. 작업 공간과 공구 등을 제공해 줘 나무로 직접 가구 등을 만들 수 있는 ‘공방’이 동네마다 한두 군데씩 있다는 사실이었다. 짜맞춤전수관도 공방이었다. 목공은 한국 사회에서 이미 꽤 인기 있는 취미였다. 백 선생은 “은퇴를 준비하거나 귀농을 계획하는 사람 사이에서 목공이 특히 인기”라고 했다. “몸만 움직일 수 있으면 나이가 들어서도 언제까지건 할 수 있는 취미”라고 덧붙였다.

대팻날을 간 뒤엔 대패질에도 도전해 봤다. 처음엔 다리를 가지런히 모은 뒤 오른쪽 다리와 함께 몸을 뒤로 빼며 손에 온 힘을 주어 대패를 끌어내렸다. 백 선생은 날을 고르게 간 대패로 깎은 면과, 대패 대신 기계로 깎은 면을 비교해 만져보도록 했다. 촉감은 물론 광택 면에서도 차이가 컸다. 백 선생은 “짜맞춤 가구를 만들 때 기계 대신 수공구를 이용하는 이유”라며 “그만큼 수공구를 잘 쓰는 법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패를 ‘쳐’ 가구를 제작하는 데 쓸 자재를 만든 다음엔 톱질을 할 차례였다. 백 선생은 “짜맞춤 가구는 0.01㎜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못을 쓰지 않고 목재끼리 서로 꽉 맞물려야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크거나 작으면 견고함이 약해진다고 설명했다. 정밀함의 비결은 ‘칼금’이다. 연필로 금을 긋고 톱으로 잘라선 정밀함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연필 금이 굵기 때문에 어딜 기준으로 자르냐에 따라 오차가 생긴다는 얘기다. 백 선생은 칼로 자재 위에 금을 그은 뒤 톱으로 잘라내는 시범을 보여줬다. 톱날이 한 치도 오차 없이 칼로 그은 가느다란 틈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급하고 덤벙대는 성격인데도 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빨리빨리’를 안 좋아하는 한국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처음 시작할 땐 다들 조급하고 꼼꼼하지 못하다가도 나중엔 수공구(대패 톱 등)만 들면 차분해지고 꼼꼼해진다”고 웃었다. 대패를 난생처음 만져 보는 초심자라도 4개월 정도 배우고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누구나 짜맞춤 가구를 만들 수 있다고도 했다.
대패질하며 0.01㎜와의 승부…'나만의 가구'는 그렇게 탄생했다
평생 취미로 제격

공방은 평일 오전에도 회원들로 북적였다. 가구를 만들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칼금을 따라 톱질하는 법을 연마 중인 사람도 있었다. 최철은 씨(47)는 “‘디아이와이(DIY) 목공’을 하다 제대로 목공을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이곳에 오는 사람 중 절반은 DIY 목공을 하다 온 사람들이라고도 했다. DIY 목공이란 인터넷 주문이나 인근 공방에서 가공된 목재료를 받아와 못을 박고 니스 칠 등을 해 마무리하는 작업을 말한다.

최씨는 “DIY 목공이 처음엔 재밌다가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어 2~3개월 만에 흥미가 시들해졌는데 짜맞춤 기술은 배울 것도 많고 깊이가 있어 평생 취미는 물론 은퇴 후 직업으로도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종배 씨(74)는 늦은 나이에 목공에 빠졌다. 은퇴 후 소일거리를 찾다 본인이 평소 손재주가 좋다는 생각에 짜맞춤 기술을 배워보기로 했다. 2014년에 시작해 올해로 5년 차다. 전씨는 “혈압이 높았는데 목공을 하다 보면 앉아있을 수가 없고 거의 모든 작업을 서서 하다 보니 건강이 좋아졌다”며 “작업 순서를 암기하다 보면 치매 예방도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권영 씨(63)는 집이 대전인데 짜맞춤 기술을 배우느라 부평에 아예 묵을 곳을 마련했다. 김씨는 “인터넷이나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어 이곳에서 나무와 함께 지내고 있다”며 “직접 잘라낸 재료들이 서로 짜맞춰 가구가 될 때의 쾌감은 느껴본 사람만 안다”고 말했다.

백 선생은 부평에서 6년째 전수관을 운영하고 있다. 과거에 짜맞춤 기술은 도제식으로만 암암리에 물려주는 폐쇄적인 기술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며 여러 사람이 함께 연구해야 기술도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전수관을 열고 기술 전파에 힘쓰고 있다. 백 선생은 “목공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누구든 시작할 수 있는 취미”라고 말했다.

인천=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