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박원순 시장…정치·법조 거물 대거 배출
문재인 대통령·박원순 시장…정치·법조 거물 대거 배출
노무현 대통령(사법연수원 7기)에 이어 두 번째 법조인 출신 대통령을 배출한 사법연수원 12기는 마지막 ‘소수 정예’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연수원 12기는 모두 150명(수료는 149명)이다. 다음 기수부터는 사법시험 합격자가 두 배가량으로 늘면서 1981년 이후 15년간 해마다 300명 안팎이 연수원에 입소했다. 연수원 12기엔 걸출한 인물이 많다. 문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5명의 대법관과 2명의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나왔다. 인권 변호사의 대명사인 고(故) 조영래 변호사도 12기다.

149명 중 139명이 판·검사와 법무관

1982년 연수원을 수료할 때 판사나 검사, 법무관의 길을 택하지 않은 인원은 단 10명뿐이었다. 그중 한 명이 문 대통령이다. 그는 경희대 법대 재학 시절 사시 2차 합격 통지서를 시위하다 잡혀 들어간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서 받았을 정도로 학생운동에 열심이었다. 수료식에서 차석으로 법무부 장관상까지 받고 판사 임용을 희망했지만 시위 전력이 문제가 됐다. 당시 수석은 김용덕 전 대법관이었다. 공교롭게도 35년 뒤인 2017년 5월 19대 대선에서 문 대통령에게 당선증을 준 사람이 중앙선관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 전 대법관이었다.

변호사 개업을 택해야 했던 문 대통령에게 부산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개해준 사람은 동기인 박정규 변호사다. 나이가 많아 판·검사 임용이 어려울 것으로 알고 일찌감치 노 전 대통령과 동업하기로 했던 박 변호사가 예상과 달리 검사에 임용되자 본인 대신 문 대통령을 소개해줬다.

현재 김앤장에서 일하고 있는 박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에서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냈다. 문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부림사건’ 피해자들을 무료로 변론하고 부산 지역의 노동·인권 사건을 전담하다시피 했다.

인권 변호사의 대명사로 통하는 고 조영래 변호사도 연수원 수료 직후 재야의 길을 걸었다. 조 변호사가 사시에 합격한 것은 1971년이지만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아 뒤늦게 12기로 연수원에 들어갔다.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 권인숙 씨를 변호하고, 연탄공장 옆에 살다가 진폐증에 걸린 시민을 대리하는 등 각종 시국 사건과 공익 소송에서 활약했다. ‘미혼 여성의 정년은 25세’란 1심 재판부의 판결에 항소해 여성의 정년이 남성과 동일한 55세임을 확인받은 것도 조 변호사다.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창립을 주도하고 단체 이름을 직접 짓기도 했다.

동기인 박원순 서울시장도 조 변호사의 영향으로 임용된 지 6개월 만에 검사를 그만두고 조 변호사와 함께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부산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 등의 변론을 맡았다. 조 변호사가 별세한 뒤 1991년 영국과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와 시민운동가로 변신을 꾀했다. 참여연대를 결성하고 1995~2002년 7년간 사무처장을 맡았다. 최초의 3선, 최장기 서울시장을 맡고 있다.

국내에서 네 번째로 많은 변호사를 보유한 법무법인 세종의 창업 멤버인 김두식 세종 대표변호사도 처음부터 변호사였다. 연수원을 수료하자마자 신영무 변호사와 세종을 설립해 대형 로펌으로 키워냈다. 세종의 영문 이름인 ‘SHIN&KIM’의 ‘KIM’이 김 변호사다.

‘2·4차 사법파동’ 주역 박시환 전 대법관

재조(법원과 검찰)에도 거물이 즐비하다. 김용덕 전 대법관을 비롯해 김신 박병대 박시환 조재연 등 대법관을 5명 배출했다.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장도 2명이 나왔다. 박병대 전 처장과 오는 11일 임명되는 조재연 신임 처장이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 어려운 환경에서도 주경야독해 ‘판사의 꽃’인 대법관에 올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 전 처장은 야간고를 나와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고, 조 신임 처장은 덕수상고 졸업 후 한국은행을 다니면서 성균관대 법학과 야간을 졸업했다.

그러나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사법개혁’ 대상과 주체로 운명이 엇갈렸다. 박 전 처장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통합진보당 관련 소송 등 재판에 개입한 의혹으로 지난해 11월 역대 대법관 중 처음으로 검찰에 공개 소환됐다. 반면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명한 조 신임 처장은 이제 사법개혁의 키를 잡게 됐다.

박시환 전 대법관은 노무현 정부 대법원에서 소수 의견을 많이 낸 ‘독수리 5형제’ 대법관 중 한 명이다. 법원 내 진보적 성향의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의 이름을 짓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1988년 김용철 대법원장 유임에 반대해 연판장을 돌린 ‘2차 사법파동’의 주역이다. 2003년엔 서열 위주의 대법관 인선에 반대하며 사표를 던져 ‘4차 사법파동’을 촉발했다. 2004년 문 대통령과 함께 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대리인단에 참여했고 이듬해 대법관이 됐다. 2002년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부장판사 시절엔 최초로 ‘종교적 병역거부’ 처벌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에선 12기가 ‘비운의 기수’로 통하던 적이 있었다. 2009년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던 천성관 변호사가 검찰총장 후보에 오르자 동기 중 총장이 나오면 용퇴하는 관행에 따라 고검장 자리에 있거나 고검장 승진을 앞둔 동기들이 모두 사표를 냈다. 그런데 천 변호사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하는 바람에 새 총장은 선배 기수인 11기에서 나왔다.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도 이때 사표를 냈으나 두 달 뒤 장관이 돼 당시 동기들 사이에선 ‘그나마 다행’이란 이야기가 돌았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결정한 김창종 전 헌법재판관, 민변 회장 출신으로 대북송금 특검을 맡은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도 12기다. 황찬현 전 감사원장, 이성호 전 국가인권위원장도 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