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신년사를 통해 “성장의 혜택을 온 국민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경제정책의 기조와 큰 틀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간이 걸리고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고, 가보지 못한 길이어서 불안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가야하는 길”이라고도 했다. ‘소득주도성장’이나 ‘포용성장’이라는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기존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문 대통령은 그 모든 중심에 ‘공정’과 ‘일자리’가 있다며 ‘혁신’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한마디로 현 정부 경제정책의 3대 축인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새해에도 변함 없이 밀어붙이겠다는 얘기다. 새해 경제정책 기조에 일말의 변화를 기대했던 이들은 실망감이 적지 않을 것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휴수당 파동으로 소상공인들은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불복종 투쟁에 나섰고, 청년들은 주 15시간 미만의 ‘메뚜기’ 알바로 내몰리고 있지만 신년사는 이런 절규를 외면하고 말았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신년사 내용 중에는 혼란스럽고 상충되는 메시지가 뒤섞여 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기업 투자를 정부가 적극 지원하겠다며 “경제발전도 일자리도 결국은 기업의 투자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일자리는 민간이 만든다는 건 고정관념”이라던 지난해 초 발언과는 상반된 이야기다. 정책기조는 그대로인데 갑자기 일자리 주체가 기업이라며 투자하라니 기업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꽤나 혼란스러울 것이다.

최고통치자의 말은 그 무게가 남다르다.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때라면 특히 더 그렇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말 “필요한 경우 최저임금 인상의 보완조치를 강구하라”고 말했다. 산업계에서는 이를 ‘보완 지시’로 받아들이고 일말의 기대를 했다. 하지만 최저임금 산정 시 주휴시간을 포함하는 최저임금법 시행령은 거의 원안 그대로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사회적 대타협’도 강조했다. 신년회에 5부 요인과 정당 대표는 물론 주요 기업인, 경제단체장을 다수 초청한 것도 그런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이번에도 부르지 않았다. 대타협을 말하며 특정 단체는 빼고, 포용을 말하며 소상공인의 호소에는 눈·귀를 닫는다면 대통령의 다짐은 공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