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69조5752억원의 ‘초팽창 예산’이 법정시한을 엿새나 넘겨 지난 주말 국회를 통과했다. 증가율이 9.5%로,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10.7%) 이후 10년 만에 최고였다. 국내외 악재에 기업들이 휘청거리고, 국민들 지갑이 홀쭉해지는 와중에 정부 씀씀이만 커지는 꼴이다.

예산안 심의는 자유한국당이 ‘세금중독 예산’이라며 과감한 삭감을 자신했던 다짐과는 정반대로 끝났다. 원내대표가 기자회견까지 열어 “일자리 예산에서 8조원, 남북협력기금에서 5000억원 등 20조원을 깎겠다”고 공언했지만 빈말이 되고 말았다. 실제 삭감액은 9200억원으로, 목표액의 5%에도 못 미친다. 전의를 불태웠던 ‘가짜 일자리예산’조차 삭감액은 6000억원으로, 정부안의 2.5%에 불과하다. ‘깜깜이 예산’ 논란을 부른 남북협력기금도 10% 감액에 그쳤다.

선심성 복지예산 급증도 걱정을 더한다. 보건·고용을 포함한 복지예산 비중은 34.2%로 역대 최고다. 보수정당을 자임하는 한국당은 아동수당 등 복지예산 증액에 오히려 앞장서며 여당과 청와대를 표정 관리하게 만들어 줬다. 출산 대책에서조차 ‘영·유아 외래진료비 제로’ 등 현금복지로 치닫는 여권을 견제하기는커녕 퍼주기 경쟁을 벌일 기세다.

경기·전남도 의원들이 얼마 전 ‘청년 국민연금’ 등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선심성 사업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용기를 보여준 것과 너무 대비된다. 그래놓고서는 당 지도부 등 실세들의 지역구 민원 예산 끼워 넣기에는 어김없이 성공했다. 이게 한국당의 본색인지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