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했던 의료기기·체외진단기기 육성 방안을 포함한 의약품·의료기기·줄기세포치료제 관련 법안이 줄줄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시민단체 등의 반대 목소리를 의식해 공청회를 더 열기로 했기 때문이다. 국회 일정 등을 고려하면 연내 법안 통과가 어려워졌다.

9일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3~5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의료기기 산업 육성 및 혁신 의료기기 지원법, 체외진단의료기기법, 첨단재생의료법 등 헬스케어 분야 규제 완화 및 육성 법안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소위원회는 오는 13일 공청회를 열어 이들 법안에 대한 찬성 의견과 반대 의견을 다시 들어보기로 했다. 이후 내년 1~2월께 법안을 다시 논의할 계획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르면 2~3월께 통과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법안이 시행되는 것은 2020년께나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체외진단기기법과 의료기기법은 문 대통령이 첫 번째 혁신성장 현장 행보를 통해 약속했던 내용이다. 체외진단기기가 2012년부터 의료기기법으로 관리되면서 의료기기법은 조문별 예외 조항이 많은 ‘누더기 법’이 됐다. 새 법은 체외진단기기를 의료기기에서 분리해 출시 시기를 앞당기고 규제를 합리적으로 바꾸는 게 골자다. 혁신형 제약회사처럼 혁신형 의료기기회사나 기기를 선정해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식약처 관계자는 “체외진단기기를 별도 법에서 관리하면 사람이 아니라 검체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 특성을 고려해 면제 항목이 늘 수 있다”고 했다.

첨단재생의료법은 줄기세포 관련 규제를 완화해 난치성 환자들이 줄기세포치료제를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올해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치료제 사용을 기다리던 환자들은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

문 대통령이 약속한 연구중심병원에 기술지주자회사(산병협력단)를 허용하는 방안은 규제 개선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신약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 패스트트랙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제약산업 육성법 등은 소위원회 논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의사-환자의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바이오·헬스케어 분야를 미래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무색해졌다는 평가다. 이들 법안이 탄력받지 못하는 것은 시민단체들의 반대 때문이다. 김재헌 무상의료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신약 패스트트랙 제도가 도입되면 환자 안전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며 “시민 안전을 볼모로 제약회사의 배를 불리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복지부와 식약처는 법 개정이 필요하지 않은 내용부터 우선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신의료기술평가와 건강보험심사시스템을 바꾸는 선(先)진입-후(後)평가 제도는 관련 시행규칙 개정만으로도 시작할 수 있다”며 “내년 1월부터 감염병 진단을 위한 체외진단의료기기부터 선진입-후평가 제도를 도입해 출시 시기를 앞당길 것”이라고 했다.

이지현/양병훈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