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샘 작업에 컵라면으로 끼니 때우고 벤치에 앉아 '쪽잠'
"화장실도 못 갈 만큼 바쁘다" 서기관 한 명 뇌출혈로 쓰러져
새벽마다 숙소 찾아 배회하는 '여의도 난민' 생겨 나기도
올해 정기국회는 역대 최악의 ‘예산 국회’로 기록될 전망이다. 한 달여의 심사 기간 국회는 세 차례 파행했고, 총 9일간 ‘올스톱’됐다. ‘국회 파행→몰아치기 심사→법정시한 준수 실패→ 예산안 소(小)소위원회 가동’ 과정을 거치며 ‘예산안 셈법’은 전례없이 복잡해졌다.
국회 파행에도 소관 상임위원회 국회의원들은 ‘묻지마 증액’으로 자기 몫을 챙겼다. 사상 최대인 470조5000억원 규모의 ‘초(超)팽창 정부 예산안’에서 늘어난 상임위 예산만 4조4000억원이었다. 역대 최악의 늦장심사지만 상임위에서 챙긴 몫은 사상 최대 규모다.
예산실 직원들은 증액된 사업의 적절성을 검토하며 ‘방어전’을 펴야 한다. 지난달 1일 문재인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 이후부터 한 달 이상 밤샘 작업을 하며 국회에 대기했던 이유다.
피로가 쌓이다 결국 탈이 났다. 기재부 예산실의 김모 서기관은 지난 3일 새벽 2시30분 국회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는 전날부터 말이 어눌해지는 등 뇌출혈 전조 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병원에 가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일이 많아서 안 된다”며 버티다가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쓰러졌다.
예산실 관계자는 “예산소위에서 당장 자료를 내놓으라고 압박하는 분위기에서 병원은커녕 화장실도 가기 힘들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입원 중인 김 서기관을 찾아 “새벽까지 국가 일을 하느라 애를 쓰다 이렇게 돼 안타깝다”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한 달째 가족들 못 봤다”
야근 후 새벽마다 숙소를 찾아 여의도 인근을 배회하는 ‘여의도 난민’도 생겨났다. 직원 대부분이 정부청사가 있는 세종시에 거처를 두고 있어 별도 숙소를 구해야 한다. 기재부는 여의도 켄싱턴호텔과 장기 계약을 맺고 과장급 이하 공무원 여비 규정인 7만원에 맞춰 하룻밤을 지낼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연말 시즌엔 밤 9~10시면 대부분 만실이 돼 인근의 더 비싼 호텔이나 찜질방에 머물다 국회로 다시 출근하는 공무원도 적지 않다. 켄싱턴호텔 관계자는 “새벽 2~3시에 들어와 눈만 붙인 뒤 아침식사도 거르고 7시에 나가는 공무원들을 보면 안쓰럽다”고 말했다.
매일 새벽 2~3시에 일을 마치지만 제대로 된 연장근로 수당도 챙기지 못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공무원은 하루 4시간, 월 57시간 이내만 연장근로가 인정된다. 이마저도 김 서기관과 같은 4급 이상 공무원은 수당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예산 심사 강행군 속에 공무원들은 여야 협상이 결렬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국회에서 철야 근무를 해야 하는 시간이 기약 없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2014년 국회 선진화법 도입 이후 법정시한인 12월2일 처리됐던 예산안은 작년엔 이보다 나흘 늦은 6일, 올해는 더 늦어졌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5일 여야 협상이 결렬된 뒤 “예산실 직원들이 하루 두세 시간씩 자며 국회 본회의장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다”며 “이들에게 미안해서라도 일정을 명확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회계연도(1월1일) 시작 한 달 전에서야 속도를 내는 현행 예산심사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새 회계연도 시작(10월1일)보다 4개월 앞선 5월15일까지 세출 예산안을 심의한다. 이후 예산 부수법안만 별도로 한 달 동안 심사해 6월15일 심의를 끝낸다. 기재부 관계자는 “9월 말 정부 예산안 제출 후 한 달 이상 손 놓고 있다가 연말에 심사하는 관행은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소현/김우섭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