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車부품사 절반이 '적자 늪'…일자리도 1년새 1만개 사라졌다
한국 자동차 부품회사들이 지난 3분기(7~9월)에 사상 최악 수준의 성적표를 받았다. 상장 부품사 절반이 이익을 남기지 못했다. 대부분 회사는 매출이 뒷걸음질쳤다. 완성차업체의 판매부진 여파로 지난해 시작된 부품업계 위기의 골이 예상보다 깊고 오래 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탄탄하던 부품사마저 ‘휘청’

한국경제신문이 18일 상장 부품사 85곳의 3분기 실적을 전수조사한 결과 40곳이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적자 기업 수는 지난 2분기(15곳)보다 배 이상 늘었다. 흑자를 낸 나머지 45개 기업의 사정도 좋지 않다. 영업이익이 전 분기보다 늘어난 회사는 15곳에 불과했다. 85개 회사 중 70곳의 이익이 줄었거나 적자를 냈다.

삼보모터스, 화신정공, 영화금속, 유니크 등 매 분기 꾸준하게 흑자를 이어가던 기업도 지난 3분기에는 적자로 돌아섰다. 탄탄하던 회사들마저 위기를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업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상장 부품사의 10.5%에 달하는 9개 회사는 올 1~3분기 내리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위기가 장기화하면 이들 기업 중 일부가 먼저 무너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대모비스와 한온시스템, 성우하이텍 등 연 매출이 1조원을 웃도는 초대형 부품사도 영업이익과 매출이 줄어드는 추세다.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부품사(지난해 매출 기준)인 서연이화와 서진오토모티브는 3분기에 각각 5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봤다.

중소형 부품사의 사정은 더 나쁘다. 연간 매출 1조원 이상 기업을 뺀 나머지 상장 부품사 68곳의 3분기 평균 영업이익률은 0.5%에 그쳤다. 1000원어치 부품을 팔아 5원을 남긴 셈이다. 연 매출 5000억원 수준인 경창산업과 동국실업 등은 3분기에만 각각 100억원 넘는 적자를 냈다.

연 매출 1500억원 미만 기업 20곳 중에는 65%인 13개 회사가 3분기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익을 낸 기업들도 대부분 간신히 적자를 면한 수준이다. 16곳은 전 분기보다, 13곳은 전년 동기보다 매출이 줄었다.
상장 車부품사 절반이 '적자 늪'…일자리도 1년새 1만개 사라졌다
부품사 일자리도 급감

부품사들이 ‘실적 쇼크’를 기록한 주 이유는 국내 완성차업체의 판매 부진에 있다. 현대·기아자동차를 비롯한 완성차업체들은 지난해부터 중국과 미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올 상반기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도 부품업계에 큰 타격을 줬다. 이 와중에 일부 완성차업체가 부품사에 단가 인하를 강도 높게 요구했다. 1차 협력사들은 거래처인 2·3차 협력사로부터 직간접적인 자금 지원을 요구받으면서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도 부품사들의 발목을 잡은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한 부품사 대표는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이 고스란히 비용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부품업계 위기는 기업 실적악화에 그치지 않고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자동차 및 부품산업은 국내 제조업 일자리의 약 12%를 차지할 정도로 고용에 많은 기여를 한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국내 자동차 및 부품업계 고용 인력은 39만500명이다. 2015년 9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1년 전(40만38명)과 비교하면 1만 명이 줄었다. 사라진 1만 개의 일자리 중 상당수가 부품업체 일자리인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내년 이후 부품업계의 ‘연쇄 도산’ 우려가 현실화하면 일자리 감소폭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부품업계에서는 정부의 늑장대응이 위기를 더 키웠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지난 6월 현대차 1차 협력사 리한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할 때부터 부품업계의 붕괴조짐이 감지됐는데도 정부가 손놓고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는 대출 보증 확대 및 연구개발(R&D) 자금 지원, 자동차 구매 관련 세제 혜택 제공, 근로시간 단축 및 최저임금제도 적용방식 일부 조정 등을 정부에 요청했다. 정부는 이르면 이달 말 부품업계를 지원할 종합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도병욱/박종관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