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CCTV 95%가 저화질…얼굴 안보여 범인 어떻게 잡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경찰팀 리포트
얼굴 식별 불가능한 CCTV
지하철 성범죄 발생 건수
5년 간 2배 이상 증가했는데
200만 화소 고화질 2% 불과
서울 초·중·고 설치 CCTV도
200만 화소 미만 33% 달해
학교폭력 해결 제 역할 못해
대책 마련 나선 공공기관들
서울교통공사 4년간 774억 투입
고화질 CCTV로 교체 예정
"AI 기술 활용 땐 선명하게 복원…지능형 CCTV 개발도 대안"
얼굴 식별 불가능한 CCTV
지하철 성범죄 발생 건수
5년 간 2배 이상 증가했는데
200만 화소 고화질 2% 불과
서울 초·중·고 설치 CCTV도
200만 화소 미만 33% 달해
학교폭력 해결 제 역할 못해
대책 마련 나선 공공기관들
서울교통공사 4년간 774억 투입
고화질 CCTV로 교체 예정
"AI 기술 활용 땐 선명하게 복원…지능형 CCTV 개발도 대안"
#1. 지난 1월 인천 부평구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A씨(20)가 둔기로 수차례 폭행당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인근 폐쇄회로TV(CCTV)에서 용의자 B씨(46)가 택시를 타고 도주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그러나 수사는 거기서 멈춰섰다. CCTV 화질이 좋지 않아 택시 번호판을 확인할 수 없었던 것. 경찰 관계자는 “CCTV의 성능만 좋았다면 곧바로 용의자를 검거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2. 지난달 8일 충북 옥천의 한 시골길에서 70대 노인이 달려오던 차량에 치여 현장에서 숨졌다. 사고를 낸 차량 운전자는 그대로 도주했다. 어두운 밤길인 데다 목격자도 없어 수사가 미궁에 빠질 위기에 놓였다. 다행히 현장에는 한 달여 전 교체된 고화질 CCTV가 있었다. CCTV에는 뺑소니범 C씨(54) 소유의 차량 번호가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서울지하철 CCTV 95%, 50만 화소 미만
전국에 설치된 CCTV가 ‘경찰의 눈’으로서 범죄 예방과 용의자 검거에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하철과 학교 등 일부 공공시설엔 여전히 화질이 떨어지는 CCTV가 설치, 운영돼 ‘국민안전의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공공기관에서 설치한 CCTV는 지난해 95만4261대로 4년 전인 2013년(56만5723대)에 비해 두 배가량 증가했다. 민간이 보유한 CCTV까지 합치면 1000만 대를 넘어섰다는 게 경찰의 추산이다. CCTV의 방범 효과는 이미 입증돼 있다. 경찰이 최근 작성한 ‘CCTV 활용 실시간 범인 검거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이후 CCTV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범인을 검거한 건수만 6만1000여 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50만 화소 미만의 저화질 CCTV가 상당수 남아 있다는 점이다. 서울지하철이 대표적이다.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서울 1~8호선 역사와 전동차 안에 설치된 CCTV 가운데 50만 화소 미만은 95%(1만1112대)에 달했다. 200만 화소 이상 고화질 CCTV는 전체의 2%(293대)에 그쳤다. 50만 화소 미만 CCTV는 근거리에 있는 사물도 식별이 어려워 범죄가 발생해도 수사에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지하철은 좁은 장소에 사람들이 몰려 성범죄, 절도 등 각종 범죄에 취약하다. 실제 지하철 성범죄 발생 건수는 지난해 2171건으로, 2012년(1038건)보다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서울지하철경찰대 관계자는 “출퇴근 시간에 신고가 많이 들어오지만 CCTV 화질이 좋지 않아 얼굴이 거의 점으로 보일 정도”라며 “이렇게 되면 증거 확보는커녕 용의자를 추적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학교도 저화질 CCTV가 많은 공공기관으로 꼽힌다. 서울교육청에 따르면 초·중·고·특수학교에 설치된 CCTV(3만3744대) 중 200만 화소 미만은 33%(1만1051대)로 집계됐다. 서울의 각 자치구가 운영하는 200만 화소 미만 CCTV 비중(20%)보다 10%포인트 높다. 형사과에 근무 중인 한 경찰관은 “한 학교 성범죄 사건을 수사하면서 유명 대학교수까지 찾아가 CCTV 영상 분석을 의뢰했지만 끝내 용의자가 타고 도주한 차량 번호를 알아내지 못한 적이 있었다”며 “두 달이 지나 가까스로 피의자를 검거했지만 이미 추가 범행을 저지른 뒤였다”고 전했다. 그는 “사건 발생 직후 고화질 영상만 얻을 수 있었더라도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화질 CCTV로 교체…“기술 개발도 대안”
CCTV를 관할하는 공공기관들은 부랴부랴 관련 예산을 늘리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서울교통공사는 2022년까지 774억원을 투입해 서울지하철 역사에 설치된 기존 저화질 CCTV를 고화질로 교체할 방침이다. 1220억원을 추가로 확보해 CCTV도 증설할 계획이다. 다만 이미 막대한 운영적자(지난해 기준 5253억원)를 보고 있는 서울교통공사가 시설 투자를 정상적으로 집행할 수 있을지가 변수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CCTV 교체 사업은 시민 안전과 직결된 부분인 만큼 서울시 차원에서 예산을 투입해 예정대로 집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관내 초·중·고·특수학교에도 2021년까지 기존 저화질 CCTV를 고화질로 교체하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관할 자치구 역시 64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저화질 CCTV 교체 비용을 지원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양적 투자가 아니라 CCTV 관리체계를 개선하고 관련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심희섭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미 민간 CCTV로 커버 가능한 지역에 또다시 공공기관이 고화질 CCTV를 달 필요는 없다”며 “전반적인 CCTV 관리 체계를 구축해 치안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무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활용하면 해상도가 낮은 CCTV 영상을 선명하게 복원할 수 있다”며 “CCTV 예산을 확보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영상 분석 기술이나 지능형 CCTV를 개발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
#2. 지난달 8일 충북 옥천의 한 시골길에서 70대 노인이 달려오던 차량에 치여 현장에서 숨졌다. 사고를 낸 차량 운전자는 그대로 도주했다. 어두운 밤길인 데다 목격자도 없어 수사가 미궁에 빠질 위기에 놓였다. 다행히 현장에는 한 달여 전 교체된 고화질 CCTV가 있었다. CCTV에는 뺑소니범 C씨(54) 소유의 차량 번호가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서울지하철 CCTV 95%, 50만 화소 미만
전국에 설치된 CCTV가 ‘경찰의 눈’으로서 범죄 예방과 용의자 검거에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하철과 학교 등 일부 공공시설엔 여전히 화질이 떨어지는 CCTV가 설치, 운영돼 ‘국민안전의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공공기관에서 설치한 CCTV는 지난해 95만4261대로 4년 전인 2013년(56만5723대)에 비해 두 배가량 증가했다. 민간이 보유한 CCTV까지 합치면 1000만 대를 넘어섰다는 게 경찰의 추산이다. CCTV의 방범 효과는 이미 입증돼 있다. 경찰이 최근 작성한 ‘CCTV 활용 실시간 범인 검거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이후 CCTV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범인을 검거한 건수만 6만1000여 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50만 화소 미만의 저화질 CCTV가 상당수 남아 있다는 점이다. 서울지하철이 대표적이다.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서울 1~8호선 역사와 전동차 안에 설치된 CCTV 가운데 50만 화소 미만은 95%(1만1112대)에 달했다. 200만 화소 이상 고화질 CCTV는 전체의 2%(293대)에 그쳤다. 50만 화소 미만 CCTV는 근거리에 있는 사물도 식별이 어려워 범죄가 발생해도 수사에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지하철은 좁은 장소에 사람들이 몰려 성범죄, 절도 등 각종 범죄에 취약하다. 실제 지하철 성범죄 발생 건수는 지난해 2171건으로, 2012년(1038건)보다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서울지하철경찰대 관계자는 “출퇴근 시간에 신고가 많이 들어오지만 CCTV 화질이 좋지 않아 얼굴이 거의 점으로 보일 정도”라며 “이렇게 되면 증거 확보는커녕 용의자를 추적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학교도 저화질 CCTV가 많은 공공기관으로 꼽힌다. 서울교육청에 따르면 초·중·고·특수학교에 설치된 CCTV(3만3744대) 중 200만 화소 미만은 33%(1만1051대)로 집계됐다. 서울의 각 자치구가 운영하는 200만 화소 미만 CCTV 비중(20%)보다 10%포인트 높다. 형사과에 근무 중인 한 경찰관은 “한 학교 성범죄 사건을 수사하면서 유명 대학교수까지 찾아가 CCTV 영상 분석을 의뢰했지만 끝내 용의자가 타고 도주한 차량 번호를 알아내지 못한 적이 있었다”며 “두 달이 지나 가까스로 피의자를 검거했지만 이미 추가 범행을 저지른 뒤였다”고 전했다. 그는 “사건 발생 직후 고화질 영상만 얻을 수 있었더라도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화질 CCTV로 교체…“기술 개발도 대안”
CCTV를 관할하는 공공기관들은 부랴부랴 관련 예산을 늘리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서울교통공사는 2022년까지 774억원을 투입해 서울지하철 역사에 설치된 기존 저화질 CCTV를 고화질로 교체할 방침이다. 1220억원을 추가로 확보해 CCTV도 증설할 계획이다. 다만 이미 막대한 운영적자(지난해 기준 5253억원)를 보고 있는 서울교통공사가 시설 투자를 정상적으로 집행할 수 있을지가 변수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CCTV 교체 사업은 시민 안전과 직결된 부분인 만큼 서울시 차원에서 예산을 투입해 예정대로 집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관내 초·중·고·특수학교에도 2021년까지 기존 저화질 CCTV를 고화질로 교체하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관할 자치구 역시 64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저화질 CCTV 교체 비용을 지원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양적 투자가 아니라 CCTV 관리체계를 개선하고 관련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심희섭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미 민간 CCTV로 커버 가능한 지역에 또다시 공공기관이 고화질 CCTV를 달 필요는 없다”며 “전반적인 CCTV 관리 체계를 구축해 치안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무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활용하면 해상도가 낮은 CCTV 영상을 선명하게 복원할 수 있다”며 “CCTV 예산을 확보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영상 분석 기술이나 지능형 CCTV를 개발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