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주인공 꿈꾸며 도전한 드리프트, 이론은 완벽한데…차야, 넌 왜 빙글빙글 도니
다시 돌고. 돌고, 돌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정신없이 휙휙 지나갔다. 나는 태풍의 핵 속에 있었다. 자동차가 스핀(회전)할 때마다 인스트럭터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들려왔다. “또 똑같은 실수를 하셨죠. 시간은 계속 가고 기회도 점점 줄어듭니다.”

‘진짜 드리프트(drift)’는 달랐다. 키보드 버튼만 ‘틱’ 누르면 되던 게임 속 드리프트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드리프트?’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드리프트 같은 걸 배워서 어디다 쓰냐”고. 맞는 말이다. 일반도로에서 드리프트를 하면 ‘난폭운전’으로 신고당할 가능성이 높다. 재산상 피해도 크다. 타이어가 빠르게 마모된다. 그럼에도 드리프트를 배워 보고 싶었다.

영화 ‘분노의 질주’ 속 주인공처럼 직접 운전하는 차를 미끄러뜨려 보고 싶었다. 바깥에서 ‘우와!’ 하고 구경하는 대신 드리프트를 직접 하는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철없는 생각이었다. 주변에 운전 좀 한다는 친구들 얘기를 듣고 더 그랬다. 드리프트를 못하는 친구가 없었다. 한 번 인터뷰를 해보고 친구가 된 넥센 스피드레이싱 단골 챔피언 김재우 선수는 결승선을 통과할 때마다 드리프트 세러모니를 보여준다. 다른 한 친구도 공터에 주차를 할 때면 드리프트로 차를 세운다고 했다. 멋지게.

“운전이 내 취미야”라고 자신있게 말하기 위해선 드리프트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 짬을 내 인천 영종도에 있는 BMW 드라이빙센터를 찾았다. 잘 관리된 차와 안전이 확보된 환경에서 숙련된 인스트럭터에게 운전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고 들었다. 내 차 타이어가 닳을 걱정도 없었다.

운전대 앞에 앉기 전 이론교육을 먼저 들었다. 수업을 맡은 인스트럭터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여러분 모두 이 시간이 끝날 때쯤에는 충분히 드리프트를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영화 주인공을 꿈꾸며. 그때만 해도 인스트럭터의 말이 사실인 줄 알았다. 그때만 해도….
영화 속 주인공 꿈꾸며 도전한 드리프트, 이론은 완벽한데…차야, 넌 왜 빙글빙글 도니
오버스티어를 정복하자

수업에 이용할 차는 BMW M3와 M4였다. 최대출력 450마력에,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4.1초밖에 걸리지 않는 스포츠카다. 시동을 켜자마자 ‘우르릉’ 하는 소리가 났다. 흥분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본격적인 드리프트 수업은 원형 코스에서 진행됐다. 가운데 잔디밭을 중심으로 뱅글뱅글 도는 코스다. 코스 군데군데 설치된 스프링클러에서는 물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느린 속도에서도 차를 쉽게 미끄러뜨릴 수 있도록 하고 타이어가 받는 무리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기어는 그럼 2단으로 놓고 출발!

드리프트 첫 단계는 ‘오버스티어(oversteer)’를 정복하는 것이었다. 오버스티어란 자동차의 네 바퀴 중 뒷바퀴가 노면을 붙드는 접지력을 잃어버리고 헛도는 상황을 말한다. 가령 좌회전 중에 오버스티어 현상이 일어나면 자동차의 앞머리는 본래 가려고 했던 것보다 더 왼쪽으로 쏠린다. 이때 운전대를 재빨리 오른쪽(반대쪽)으로 감아야

한다(카운터스티어). 운전대를 반대쪽으로 늦게 감으면 차의 앞머리는 점점 왼쪽으로 쏠리다 못해 그만 돌아 버린다. 기자가 탄 M3는 엔진의 힘을 뒷바퀴로만 전달하는 후륜구동 차량이다. 조금만 페달을 밟아도 뒷바퀴가 맹렬하게 헛도는 오버스티어가 쉽게 일어났다. 이보다 더 세게 밟으면 곧장 뱅글뱅글 돌아 버리는 스핀 상태로 들어간다. 하지만 차가 도는 게 무서워 오버스티어를 내지 못하면 드리프트는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일단 차를 미끄러뜨리는 것이 드리프트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내 엉덩이가 드리프트 센서”

1970년대 F1 그랑프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 ‘러시’에서 챔피언 니키 라우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엉덩이가 센서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차가 미끄러지기 시작하는 순간은 어떤 감각 기관보다 엉덩이가 빠르게 눈치챘다. 뒷바퀴가 미끄러지기 시작하는 ‘쌔-’한 기분이 엉덩이로 느껴지면 재빨리 운전대를 반대로 감아야 했다. 그 다음엔 오른발이 나설 차례다. 가속페달을 필요 이상으로 더 밟으면 차가 스핀한다. 반대로 가속페달을 밟는 힘을 너무 빼면 뒷바퀴가 헛도는 일을 멈춰 버린다. 드리프트가 풀려 버리는 것이다.

드리프트는 오른발 끝으로 조절하는 엔진의 회전수(RPM)와 운전대를 감고 푸는 움직임 사이의 균형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머리로는 안다고 해도 손과 발까지 아는 건 아니었나 보다. 결국 주어진 3시간 안에 꿈꾸던 드리프트는 완성하지 못했다.

야속한 인스트럭터는 그제서야 말했다. “원형 코스를 드리프트가 풀리지 않은 채 두 바퀴를 돌아야 ‘성공’으로 인정해줍니다.” 3시간 만에 드리프트를 배워가는 사람은 10명 중 3명도 안 된다고 했다. 그것도 평소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는 사람만 성공한단다. 이날 수업에 참가한 네 명 중 한 명도 드리프트를 완성하지 못했다. “보통 이틀 연속으로 수업하거나, 재수 삼수도 많이 해요. 이수하면 영화에 나오는 ‘관성 드리프트’도 가르쳐 드릴게요.” 인스트럭터는 끝까지 약을 올렸다. 여길 또 와야 해 말아야 해.

■드리프트

차를 임의로 미끄러지게 하는 기술을 말한다. 뒷바퀴는 접지력을 잃고 헛돌지만 앞바퀴로는 조향을 할 수 있는 상태다. 이때 차는 평소와 달리 앞이 아닌 옆으로 간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