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석원 씨가 가나아트부산에 전시된 작품 ‘황소2’를 설명하고 있다.  /가나아트부산 제공
사석원 씨가 가나아트부산에 전시된 작품 ‘황소2’를 설명하고 있다. /가나아트부산 제공
‘당나귀 작가’로 유명한 사석원 씨(58)가 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로 여행을 떠난 건 2007년이다. 초원을 여행할 당시, 힘센 자에게 희생당하지 않으려고 긴장을 늦추지 않는 동물들의 모습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한편으론 버펄로를 물어뜯는 사자와 누 떼를 잡아먹는 악어, 코끼리, 들소, 얼룩말 등 야생의 광경을 숨 막힌 채 바라봤다. 닭, 당나귀, 올빼미, 호랑이 등 따뜻하고 해학적이면서 세련된 원시성을 지닌 동물을 주로 그렸던 그에게는 충격이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도처에서 확인한 그는 치열한 약육강식의 세계를 화면에 풀어내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여행을 결산한 2010년 전시회는 수많은 미술애호가를 끌어들이며 잔잔한 돌풍을 일으켰다.

사씨가 8년 만에 다시 동물 그림을 들고 부산 화단에 돌아왔다. 해운대 해변로 노보텔앰배서더호텔 4층 가나아트부산에서 오는 25일까지 펼치는 ‘정면 돌파’전은 지난 5월부터 강인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동물의 정면 모습을 캔버스에 현란하게 옮긴 근작 32점을 내보이는 자리다.

아직도 어린 왕자처럼 해맑은 사씨는 “동물의 당당한 정면 모습에서 기운과 교훈을 얻어 사람들의 내면에 숨어든 교만과 착각, 부조리, 위선, 탐욕 등을 쳐부수고 싶었다”고 전시회 취지를 설명했다.

당당한 것은 물론, 고귀하기까지 한 동물들의 모습을 닮고자 한 그의 열망은 현란한 색채미학으로 재탄생했다. 전시장에는 그만의 필법으로 한껏 고조된 생명의 꿈틀거림이 날것으로 다가온다. 산도 뚫고 지나갈 듯 우직한 기세의 황소, 포효하는 호랑이, 저돌적인 돼지, 눈을 부릅뜨고 울어 젖히는 수탉 등은 살아있는 것 같은 원초적 생명력을 분출한다. 원색의 두터운 물감이 주는 물질감과 촉각성으로 인해 화면 전체에 생생한 기운이 가득하다.

전통 한국화 기법으로 서양 재료를 써 동물을 그린 작업 방식도 흥미롭다. 사씨는 유화로 작업하면서도 동양화 붓을 놓은 적이 없다. 팔레트를 쓰지 않고 캔버스에 원색의 유화 물감을 짠 뒤 그리는 기법이다. 정교하게 그림을 그린 뒤 두껍게 발라진 물감을 나무판으로 밀어낸다. 지우기를 가미한 화면에는 뭉개지고 밀린 흔적이 고스란히 남는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 지웠다고 그는 설명했다. 화면에 올려진 색감은 한 번 지웠을 때 채도와 명도가 올라가 더 밝은 느낌을 준다.

동국대 미대를 졸업한 사씨는 1984년 포장마차 풍경을 담은 수묵담채화로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하면서 상금 500만원을 받았다. 당시 500만원은 대형 아파트 한 채 값이었는데 5년간 직업을 바꾸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전두환 정부의 인재관리정책 수혜로 대상 수상과 함께 군대 면제도 받았다. 그게 계기가 돼 국비 장학생으로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파리8대학에서 원시미술을 공부한 그는 아프리카 출신 지도교수를 만난 게 동물과의 강한 인연을 만들어 냈다. 동물은 물론 금강산과 전국 유명산의 폭포, 외국인 노동자의 삶을 화면에 담아내 돌풍을 일으킨 그는 이름 석 자만으로 미술시장의 스타가 됐다. ‘영원한 창작 에너지는 청춘’이라 말한 그는 이제 동물의 정면 모습에서 기운을 받아 ‘젊은 60대’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고 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