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북한과의 대화를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8일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던 미국과 북한의 고위급 회담이 북한의 취소 통보로 전격 연기된 뒤 나온 발언이다. 2차 미·북 정상회담 시기에 대해서도 “내년 초 언젠가”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 시기를 내년 이후라고 공식화한 건 이번이 처음으로 미·북 대화 속도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곧 만난다"→"중간선거 후"→"내년 초"…점점 밀리는 美·北 회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내년 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2차 정상회담 개최 입장을 확인하면서도 “제재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협상을) 서두를 것 없다”고 말했다. 특히 “서두를 것 없다” “급할 것 없다”는 발언을 7차례나 반복했다. 대북제재 해제를 위해서는 북한의 대응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미 정부의 기존 원칙을 재확인한 측면이 강하지만 미묘한 시점에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우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뉴욕 회담이 이날 새벽 전격 취소됐다. 미 국무부는 불과 이틀 전 고위급 회담이 8일 뉴욕에서 열린다고 발표했는데 갑자기 이를 취소해야 해 체면을 구기게 됐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실무협상도 두 달 가까이 감감무소식이다.

2차 미·북 정상회담도 자연스럽게 일정이 밀릴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 정부 인사들의 발언을 추적해보면 정상회담 일정은 계속해서 뒤로 밀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처음 공식화한 지난 9월19일만 해도 “김 위원장과 곧 만날 것”이라고 했다. 교착상태에 빠졌던 미·북 관계가 3차 남북한 정상회담을 계기로 돌파구를 찾을 때였다. 당장 10월이라도 2차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열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달 열린 뉴욕 유엔총회 후 “북한과 시간 게임은 하지 않겠다”며 “(비핵화가)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5개월이 걸리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 기류 변화를 시사했다. 이어 지난달 9일엔 “선거 유세가 너무 바쁘다”며 정상회담 시기를 “중간선거 이후”로 미뤄놨다.

그로부터 사흘 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두어 달 뒤 보게 될 것 같다”고 했지만 약 2주일 만에 다시 “내년 1월1일 이후가 될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시기를 “내년 초 언젠가”라고 밝힌 것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이다. 북핵 협상을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전날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전처럼 일방적으로 대북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뉴욕 고위급 회담이 취소된 배경도 관심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다른 일정들 때문이라며 “회담 일정은 다시 잡힐 것”이라고 했다. 미 국무부도 “순전히 일정을 다시 잡는 문제”라고 했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이날 “미국이 ‘북측으로부터 서로 일정이 분주하니 연기하자는 통보를 받았다’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CNN은 미국은 정상회담 추진 전 북핵 사찰 허용 같은 조치를 원하는 반면 북한은 제재 완화 조치가 먼저 이뤄지길 바랐고 미국은 그럴 의향이 없었다고 전했다. 미국의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완화’ 원칙과 북한의 ‘선 제재완화’ 요구가 충돌하면서 대화가 취소됐다는 설명이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이미아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