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기름과 들기름은 한식의 필수 재료다. 삼국유사, 동의보감에도 등장한다. 그런데 요즘 참기름은 사실 전통의 맛이 아니다. 공장에서 ‘고온압착’ 방식으로 생산되는 게 대부분이다. 깨를 270도 이상 고온에서 볶아 기름을 짜면 많은 지방이 더 쉽게 빠져나오기 때문이다. ‘갈색의 고소한 맛’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참깨의 탄 맛이 섞여 있는 셈이다.

"뉴욕서 통한 참기름으로 세계 미식시장 공략"
참기름과 들기름의 제조 방식을 확 바꿔 세계 시장을 두드리는 ‘기름 장인’이 있다. 쿠엔즈버킷의 박정용 대표(50·사진)다. 백화점 식품 마케터로 일하던 박 대표는 7년간 전통 기름을 독학했다. 2012년 회사를 설립한 뒤 서울 역삼동 아파트 단지 안에 59㎡ 규모의 작은 방앗간을 냈다.

여행용 가방에 참깨를 가득 싸들고 독일 덴마크 등의 기계회사 10여 곳을 돌기도 했다. 박 대표는 “올리브유 착유기계로 참기름을 짰는데 번번이 실패했다”며 “6개월에 걸쳐 독일 엔지니어와 함께 기계를 직접 개발했다”고 말했다.

그는 참기름과 들기름을 140도 이하 저온에서 원적외선으로 볶는 방식을 적용했다. 제약용 필터로 걸러낸 저온압착 참기름의 색은 갈색이 아니라 황금색. 맛과 향도 옅었다.

박 대표는 “처음엔 소비자들이 외면할 줄 알았는데 건강에 좋은 기름, 옛날 맛의 참기름과 들기름이라는 소문이 1년 만에 퍼지면서 백화점 등에서 먼저 입점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일본 셰프들도 몰려왔다. 가격은 기존 참기름과 들기름보다 몇 배 비싼데도 갤러리아백화점, 현대백화점 전 점, SSG청담점과 도곡점 등의 프리미엄 식재료 매장에서 불티나게 팔린다. 직원 3명, 연 매출 8800만원이었던 이 회사는 연 매출 1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새로운 방식으로 제조한 쿠엔즈버킷의 참기름은 해외 시장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뉴욕의 미쉐린 스타 셰프 다니엘 바타드가 쿠엔즈버킷의 기름을 사용하며 직접 홈페이지에 소개하기도 했다. 홍콩 시티슈퍼에도 입점했다. 올해는 미국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몽로의 박찬일 셰프는 “기존 참기름과 들기름은 향과 맛이 강해 서양요리에 쓰기 어려웠지만, 저온압착 방식의 기름은 어느 식재료와도 어울리는 맛을 낸다”고 평가했다.

박 대표는 기름과 커피는 비슷하다고 했다. 그는 “참깨와 들깨는 기후와 토양, 종자와 관리방법에 따라 맛과 향이 완전히 다르다”며 “커피도 산지를 구분해 다양한 맛과 향을 즐기는 것처럼 우리의 전통방식 참기름과 들기름도 이제 가치 소비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