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다시 '이란 원유 제재'…"한국엔 6개월간 수입금지 적용 안해"
미국이 대이란 경제·금융 제재를 5일 0시(현지시간·한국시간 오후 2시)부터 전면 복원하면서 한국 등 8개국에 대해 한시적 예외를 인정하기로 했다. 우려됐던 ‘11월 대란’은 피할 수 있게 됐다. 이란의 ‘기름줄’을 말림으로써 핵을 완전히 포기하도록 하겠다는 미국 의지를 세계에 다시 한번 천명한 것으로 북한과의 핵협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美, 다시 '이란 원유 제재'…"한국엔 6개월간 수입금지 적용 안해"
‘11월 대란’은 없었다

5일 블룸버그통신과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한국, 일본 등 8개국을 대이란 제재 예외국가로 지정했다. 로이터통신은 한국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한국은 미국 정부로부터 이란 제재 예외를 허용받았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외교부 등 한국 정부는 “석유화학은 한국 경제의 핵심”이라며 “동맹국인 한국에 이란 제재가 가해지면 한국 경제 전체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는 점을 적극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은 2012년 이란에 대한 첫 제재 때도 예외를 인정받았다.

미국이 이날부터 전면 복원한 경제·금융 제재의 초점은 이란의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는 원유, 천연가스 수출을 고사하는 데 맞춰졌다. 미국은 지난 5월 이란과의 핵 합의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이후 8월7일에 이란산 금과 귀금속, 철, 알루미늄, 석탄 등의 거래를 금지하는 1차 제재를 단행했다. 2016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해제한 제재 조치를 복원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련 부처 합동으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는 등 예외를 인정받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7월까지만 해도 트럼프 행정부는 ‘일체 예외가 없다’며 강경일변도로 나왔다. 한국의 이란산 원유 수입량은 지난해 말까지 전체의 13%를 차지했으나 지난 9월엔 ‘0’을 기록했다. 특히 이란산 원유 도입분 가운데 73%는 콘덴세이트(초경질유)인데 한국 석유화학산업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한국은 콘덴세이트의 절반(53%) 이상을 이란에서 수입해 왔다. 정부는 정부합동대표단을 꾸려 미측에 이란 제재 시 한국 경제에 미치는 타격을 설명하며 제재 유예를 받을 수 있도록 총력전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반전이 일어난 것은 대략 지난달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지난 2일 콘퍼런스 콜을 갖고 8개국에 대해 ‘일시적 면제’ 방침을 밝혔다. 이들 나라에 이란산 원유를 수입할 수 있도록 면제 조치를 부여할 것이라고 했다.

안도하는 정유업계

이란 제재 예외를 인정받음에 따라 국내 기업들은 최장 6개월(180일)간 이란산 원유 수입이 가능해졌다. 또 이란 중앙은행 명의의 원화 결제계좌를 통해 수출입 대금을 결제할 수 있게 됐다. 이란과의 원화무역 결제 업무를 담당해온 우리은행과 기업은행도 결제 업무를 재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 은행은 이란 제재를 앞두고 지난주 이란과의 원화무역 결제 업무를 잠정 중단했다.

국내 정유·석유화학업계는 일단 큰 고비를 넘겼다는 반응이다. 이란산 콘덴세이트는 SK이노베이션, 현대오일뱅크, 한화토탈 등 5개사가 주로 수입해 사용했다. 이란 경제 제재 문제가 불거지며 국내 기업들은 카타르, 인도네시아 등에서 물량을 확보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란 물량이 국제 시장에서 사라지자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 모두 콘덴세이트 확보전에 돌입했고 이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국내 석유화학 설비는 정해진 규격에 맞는 생산을 위해 중동산에 최적화된 상태였기에 다른 지역의 콘덴세이트를 들여온다 해도 수율 관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미국 정부의 면제 조치에 따라 국내 기업들은 이르면 한 달 뒤 이란산 콘덴세이트를 들여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이번 조치에 따라 콘덴세이트 가격 안정이 기대된다”며 “은행·보험사들의 실무 지원이 뒷받침돼야 신속한 물량 도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면제 기한이 끝나는 180일 이후에는 제재 면제 신청을 다시 해야 한다.

김채연/박상익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