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양심적 병역거부가 유죄라는 판결을 내놓은지 14년 만에
대법관 다수(9명)가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에서 인정하는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라고 결정했다. 이로 인해 현재 대법원에서 계류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227건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될 전망이다 .
종교적 사유로 병역을 이행하지 않았다가 재판을 받는 병역거부자들도 무려 930여명에 달한다.
지난해 7월 제주지법 형사3단독 신재환 판사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 두 명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양심의 자유를 형사처벌이라는 강력한 수단으로 제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을 과다하게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신 판사는 "하급심에서 유무죄가 엇갈린 판결들이 계속 나와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며 "법관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언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자신의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열흘 뒤 같은 제주지법 형사4단독 재판부에선 "양심의 자유가 헌법에 의해 보장된다는 사정만으로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여호와의 증인 신도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법조계 내에서는 이처럼 엇갈린 하급심 판단이 이번 대법원 판결로 '교통정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양심적 병역거부로 기소된 오모씨 재판에서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며 유죄 판결의 원심을 깨고 사건을 2심으로 돌려보냈다.
일률적으로 병역의무를 강제한 뒤 이를 이행하지 않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반한다는 게 대법원의 취지다. 이같은 대법원의 결정에 자유한국당은 "종교·양심적 병역거부가 악용되지 않도록 조속한 대체복무제 입법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송희경 한국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개인의 신념과 양심을 중시한 법원의 판단은 존중한다"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제도적 보완장치가 미비된 상황에서의 이번 결정은 다소 성급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송 대변인은 "당장 ‘진정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판단할 객관적 잣대와 검증절차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종교와 양심이 병역기피자들의 도피처로 악용된다면 엄청난 사회적 갈등비용만 키우게 될 것"이라면서 "남북분단이라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도 간과해선 안 된다. 북핵위협은 여전히 상존하고 남북은 대치하고 있다. 북한의 조선노동당규약에는 ‘적화통일’이 버젓이 명시되어 있다. 현역장병들의 박탈감과 사기저하도 우려된다"고 전했다..
이어 "대법원의 판결로 대체복무제의 입법이 더욱 시급한 과제가 됐다"면서 "현역복무자들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고 국방의무의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은, 모든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 마련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