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장사로 모은 전 재산을 고려대 장학금으로 내놓은 노부부 이야기에 가슴이 훈훈해진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마친 김영석·양영애 부부가 평생에 걸쳐 일군 땅과 건물의 가치는 400억원으로 고려대 역사상 개인 기부 최고액이다. 아직도 40년 된 소파와 장롱을 쓰는 이 부부의 반찬은 세 가지뿐이라고 한다.

“나 같은 밑바닥 서민도 인재 기르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어 기쁘다”는 이들처럼 우리 사회에는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기부 선행이 많다. 신문 팔아 모은 1억1200만원을 초·중·고교에 기탁한 유창일 씨, 콩나물과 국밥 장사로 번 15억원을 모두 내놓은 김유례 씨 등 수많은 ‘손수레 할아버지’와 ‘김밥 할머니’ ‘행상 부부’가 있다.

남모르게 기부하는 ‘얼굴 없는 천사’들도 있다. 전북 전주 노송동 주민센터에 18년째 기부해온 ‘천사’는 매년 성탄절 무렵에 신원을 밝히지 않은 채 온정을 베풀고 있다. 지난해까지 기부액만 5억5813만원에 이른다. 9년 전부터 전남 담양군청에 총 4억여원을 보내 화제를 모았던 또 다른 ‘천사’의 신원은 얼마 전 칠순의 전직 소방관 임홍균 씨로 밝혀졌다.

돈이 많건 적건 피땀 어린 재산을 기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들의 눈물겨운 쌈짓돈으로 자란 미래 꿈나무들의 각오는 그래서 남다르다. 장학금 덕에 무사히 학업을 마친 서울대 졸업생 이미진 씨가 최근 첫월급에서 100만원을 떼 남해군향토장학회에 기탁한 얘기는 ‘아름다운 선순환’의 한 사례다.

기업들도 대를 이어 장학·기부에 힘쓰고 있다. 며칠 전 1000억원 규모의 ‘최종현학술원’을 발족한 SK그룹을 비롯해 삼성 현대 롯데 등이 키운 인재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회장이 전 재산을 들인 관정이종환교육재단도 16년간 7500여 명에게 2300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진정한 기부는 물고기만이 아니라 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가 보람을 얻는다. 셰익스피어도 자선과 기부를 “주는 자와 받는 자를 두루 축복하는 미덕 중에서 최고의 미덕”이라고 말했다.

기부는 돈이나 땅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의료·교육 등 영역이 다양하다. 장기 기증으로 생명의 빛을 나누는 숭고한 차원까지 나아간다. 이로써 사회가 건강해지는 만큼 우리가 얻는 감동은 더 깊고 뭉클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행을 베푸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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