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알바 국가'
‘BH(청와대) 요청-공공기관 단기 일자리 확대 관련 간담회 참석 요청’ ‘사안의 긴급성 및 중요도를 감안해 임원이 참석 대상’ ‘BH에서 자료 보완을 요구함에 따라 부득이 추가조사’…. 정부가 지난달 공공기관들에 ‘체험형 청년 인턴 채용 확대’를 독려하며 보낸 이메일 내용이다. 체험형 청년 인턴은 공공기관이 ‘직장 체험기회’만 제공하는 비정규직 단기 아르바이트다. 급여도 최저임금 수준이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은 2개월~1년짜리 일자리를 빨리 만들라는 독촉 공문을 공개하면서 “청와대 일자리수석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대신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나 공기업에 배정한다면 통계청장 조수와 뭐가 다르냐”고 지적했다. 정부가 어제 발표한 고용 확대 계획 가운데 체험형 인턴 5300명, 행정업무보조원 2300명 등은 대표적인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다. 50일짜리 ‘전세임대주택 물색 도우미’까지 등장했다.

여론은 싸늘하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으로 영세 자영업자들이 아르바이트생 고용을 줄이고 있는데 정부가 혈세를 투입해 ‘알바 공화국’을 만드는 건 자기모순이라는 것이다. ‘통계분식 성장’을 넘어 ‘알바주도 성장’ ‘세금주도 성장’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의 기형적인 ‘알바 고용’은 건강한 일자리 생태계를 위협하는 것이다. 민간부문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만큼 공공부문 단기 채용을 늘리는 것은 인력의 수요공급 원리에도 맞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올 들어 공공분야 일자리 증가율이 민간 부문보다 60배나 높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1~9월 민간분야의 월평균 일자리 증가는 3만7882명으로 지난해 평균 취업자 수 대비 0.1% 증가에 그쳤다. 공공분야는 이 기간 월평균 6만2501명 늘어 지난해보다 6%나 확대됐다.

민간 아르바이트 구인 공고는 지난해의 87%로 줄었다. 편의점 일자리 셋 중 하나가 사라졌고, 음식점과 카페는 반토막이 났다. 대학생 10명 중 9명은 “생활비 마련을 위해 새 학기에 아르바이트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주 52시간 근무하는 직장인도 10명 중 4명이 “퇴근 후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했다. 젊은이들의 ‘용돈벌이’로 여겨지던 아르바이트가 전 연령대로 확산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일자리 위기가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와 최저임금 등 정책 실패에 따른 것인데도 근본 대책은 안 보인다”며 “자영업자 비중이 전체 취업자의 25%(600만 명)에 이르는 것도 양질의 안정된 일자리가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늘도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수많은 ‘알바생’들이 거리를 떠돌고 있다. 미·중 통상마찰이나 미국의 금리 인상 등 대외 리스크는 높아지고, 찬바람 부는 겨울도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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