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뮌헨공대가 지역 고등학생 영재를 대상으로 개설한 화학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이 실험을 하고 있다.  /뮌헨공대  제공
독일 뮌헨공대가 지역 고등학생 영재를 대상으로 개설한 화학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이 실험을 하고 있다. /뮌헨공대 제공
만 17세 고등학생이 기술특허를 획득했다. 대학 입학 2년 전 학사학위 논문을 썼다. 이공계를 전공으로 선택하는 학생이 늘었다. 독일 뮌헨지역 대학과 중·고등학교가 힘을 합쳐 통합 영재교육을 하면서 일어난 변화다. 영재를 선발하는 과정부터 교육 프로그램 개발, 학생 진로 상담까지 모두 대학과 중·고교가 함께했다. 학습 능력이 뛰어난 영재들은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에서 배울 법한 수학과 과학 이론을 학습하면서 뛰어난 성과를 냈다.

고교 때부터 대학 강의 들어

뮌헨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20㎞ 떨어진 오토폰타우베고(김나지움). 뮌헨지역에서 가장 먼저 이공계 전문학교인 MINT(수학·정보학·자연과학·공학) 우수학교로 뽑힌 곳이다. 독일 전역에 있는 100여 개 MINT 우수학교 중 최고 등급 학교로 꼽힌다.

이곳에는 1주일에 한 번 학교에 오지 않아도 되는 15명의 학생이 있다. 고교 졸업을 1~2년 앞두고 MINT 영재로 선발된 만 16~17세 학생들이다. 이들은 수요일마다 인근에 있는 뮌헨공대 캠퍼스로 등교한다. 거기서 대학 강의를 듣는다. 물리학 생물학 화학 컴퓨터공학 등 전공도 본인이 선택한다. 2년간 들은 강의는 나중에 대학 진학 후 전공과목을 이수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래서 학생들은 대학입학시험(아비투어)을 앞두고서도 이 공부에 매진한다.

이들은 단순 수강에만 그치지 않고 대학생처럼 개별적으로 연구 프로젝트도 수행한다. 1 대 1로 자신을 전담하는 대학교수까지 붙는다. 모두 뮌헨공대 정교수다. 또 매년 6월 한 달간 해외 다른 대학에 가서 공부한다. 오토폰타우베고와 뮌헨공대는 2009년부터 이런 영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이런 교육 과정을 거친 학생들의 성과는 속속 나왔다. 타우베고의 수학과 과학 평균은 독일 전체 평균보다 20% 가까이 높았다. 또 영재교육 과정에 참여한 학생들의 80% 이상이 이공계 대학을 선택했다.

일부 학생은 고등학생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타우베고를 다니던 도미닉 멩게 군은 2013년 17세 때 대학 전공자 수준의 논문을 써 주변을 놀라게 했다. 태양과 위성에 관한 것으로 뮌헨공대에선 멩게군에게 뮌헨공대에 입학하면 대학 졸업논문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다니엘 투구트 군은 17세 때 기술특허를 받았다. 소방헬멧에 쓸 수 있는 헬륨 조명기구를 설계해 실제 생산까지 했다. 유타 뫼링어 뮌헨공대 교수는 “기존 소방헬멧에는 뜨거운 열에 잘 견디지 못하는 조명 장비를 달아 화재 현장에서 어려움이 있었다”며 “투구트군이 개발한 헬륨 조명은 고열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독일 소방헬멧 대부분에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위화감 줄이는 독일식 영재교육

두 학교는 영재 선발 과정부터 함께한다. 뮌헨공대 MINT 전담 교수와 타우베고 교장 및 전담 교사 3명이 영재를 뽑는다. 김나지움에 입학한 5학년(만 10세) 중 지능과 적성이 일정 기준 이상인 학생들이 후보다. 이들은 5학년 때부터 10학년 때까지는 타우베고에서만 수업을 듣고 11학년 때부터 매주 한 번 뮌헨공대에 가서 강의를 듣는다.

교육 프로그램은 뮌헨공대와 타우베고가 함께 개발한다. 과학 이론보다 실생활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생활과학 위주로 구성돼 있다. 관심사가 같은 학생끼리 프로젝트를 하는 식이다. 로봇을 같이 만들거나 음악에 관심이 있는 학생끼리 전자기타를 제작했다. 일부 학생은 뮌헨공대에 있는 노벨상 수상자와 연락해 자신들의 프로젝트에 대해 자문하기도 했다.

문제는 위화감이었다. 영재교육을 받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일반 학생 사이에 벽이 생길 우려가 있었다. 사회민주주의 국가인 독일에선 평등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우열반을 나누거나 과목에 따라 능력별 수업을 하는 것에 거부감이 컸다. 그래서 같은 수업을 하면서 다른 과제를 준다. 특별활동이나 보충수업을 통해 영재들에게 별도 강의를 하기도 한다. 레고를 이용한 로봇 제작반과 드론 개발반 등이 대표적인 예다.

질케 비슈네브스키 타우베고 교장(사진)은 “제조업 강국인 독일에서도 이공계 과목이 어렵다는 이유로 우수한 학생들이 이공계 대신 법학이나 경제학을 선택해왔다”며 “MINT 교육을 통해 이공계 기피 현상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뮌헨=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