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기술 기업에 한해 차등의결권 도입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성장 잠재력이 높은 첨단기술 기업의 중국 증시 상장을 유도함으로써 국부와 기술력 유출을 막고, 증시를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국부와 기술력 유출 방지책

중국 국무원은 27일 회사법 등 법률과 자본시장 관련 규정을 보완해 기술 기업에 한해 차등의결권을 인정하는 지배구조를 허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국무원은 “혁신 기업의 자금 조달 채널을 확대하는 한편 성장 잠재력은 많지만 아직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의 증시 상장을 촉진하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구체적인 시행 시기는 밝히지 않았다.

이번 결정은 중국에서 차등의결권이 허용되지 않아 유망 기술 기업들이 해외 증시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뉴욕증권거래소나 홍콩거래소와 달리 중국 본토에 있는 상하이와 선전거래소는 아직까지 차등의결권을 도입하지 않았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는 2014년 9월 상하이와 선전거래소의 구애를 뿌리치고 뉴욕증시에 상장했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은 뉴욕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로 차등의결권제도를 들어 중국 당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상장 후 알리바바 주가가 고공 행진을 지속하면서 중국에선 “중국의 국부를 미국에 빼앗겼다”는 비판이 나왔다. 중국 최대 검색업체 바이두도 2005년 같은 이유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다.

올해 초부터 중국 정부는 해외 증시에 상장된 알리바바, 바이두 등 유명 기술 기업을 중국 본토 증시로 끌어들이기 위해 중국 주식예탁증서(CDR) 발행 형식으로 동시 상장하는 방식을 추진했지만 기업들의 호응이 적어 중단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차등의결권이 허용되면 중국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기업)의 중국 증시 상장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콩, IPO 시장에서 뉴욕 제압

미국은 사모펀드(PEF)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이 만연하던 1980년대 이후 많은 기업의 요구로 1994년 차등의결권제도를 도입했다. 홍콩도 지난 7월 개장 30년 만에 상장 규정을 고쳐 차등의결권을 인정해주기로 했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 샤오미는 규정이 바뀐 직후인 7월9일 홍콩증시에 상장했다. 레이쥔 샤오미 회장은 홍콩증시의 차등의결권 도입에 대해 “혁신 기업에서 차지하는 창업가의 가치를 인정한 것”이라며 “첨단 기술기업의 홍콩증시 상장을 촉진할 것”이라고 환영했다.

차등의결권제도를 도입한 홍콩증시는 올해 세계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뉴욕증시를 다시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홍콩과 뉴욕은 그동안 IPO 시장에서 엎치락뒤치락했다. 올 들어 지난 26일까지 홍콩증시에 입성한 기업은 84개. 이들 기업이 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286억달러(약 31조8000억원)에 달한다. 작년 같은 기간(89억3000만달러)보다 220% 급증한 수치다.

같은 기간 뉴욕증시에 신규 상장한 기업은 48개에 그쳤다. IPO 금액 역시 251억달러로 홍콩 증시에 뒤졌다. 홍콩증시는 지난해 1분기 이후 뉴욕증시에 빼앗겼던 세계 최대 IPO 시장 타이틀을 되찾았다. 컨설팅업체 딜로이트는 올해 홍콩증시 IPO 규모가 총 220개 기업, 총 384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홍콩증시 IPO는 기술 업종이 주도했다. 신규 IPO에 유입된 자금 중 통신과 정보기술(IT) 부문 비중이 47%에 달했다. 이어 소매와 금융, 부동산 업종이 각각 19%, 13%, 7%를 차지했다. 지난해 금융업종의 IPO 비중이 61%로 절대적이었던 것과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올해 홍콩증시에서 최대 IPO를 한 기업은 중국 통신인프라 기업 차이나타워로, 지난달 69억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 샤오미도 지난 7월 IPO를 통해 54억달러를 확보했고 중국 최대 온라인 음식 배달업체인 메이투안디엔핑도 이달 42억달러 규모의 IPO에 성공했다. 샤오미와 메이투안디엔핑 모두 상하이와 선전거래소의 적극적인 손길을 뿌리치고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홍콩증시 상장을 결정했다.

■차등의결권

차등의결권제도는 최대주주나 경영진이 실제 보유한 지분보다 많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지분 희석을 우려해 상장을 망설이는 기업에는 매력적인 제도다.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싱가포르 등은 도입했지만 한국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페이스북, 알리바바 등 많은 혁신 기업이 차등의결권을 활용하고 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