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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이자만 27억'…파산 직전 SK하이닉스의 대반전 [강경주의 테크X]
<테크X85> "반도체 사이클은 반복…HBM 호황기에 다운 사이클 대비해야"
26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하이닉스의 위기는 1999년 시작됐다. 하이닉스의 전신이었던 현대전자는 LG반도체를 인수하며 단숨에 세계 2위 D램 업체로 도약했지만 그 대가로 떠안은 부채는 15조원을 훌쩍 넘겼다. 1999년 인수 직후 D램 가격은 64Mb 기준 개당 7~8달러 수준이었지만 2001년 닷컴 버블 붕괴와 함께 가격은 1달러 아래로 추락했다. 매출이 수직 낙하했지만 이자비용은 연간 1조원 안팎이 고정적으로 나갔다.
업계에선 이 시점의 하이닉스가 기술적으로 부족한 회사는 아니었다고 보고 있다. 하이닉스는 D램 회로를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00분의 1 수준인 150나노미터(㎚·1나노는 10억분의 1m)까지 미세화한 공정을 양산에 안착시켰고, 고속 데이터 처리용 DDR D램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회사로 평가받았다. 시장 점유율은 15% 안팎으로, 삼성전자와 함께 세계 최상위권이었다. 하이닉스의 위기는 기술 격차가 아니라 가격 폭락과 재무 부담이 핵심이었다.
2001~2002년은 하이닉스가 존폐의 기로에 놓인 시기다. 최악의 다운 사이클에 회사는 워크아웃(기업 회생절차)에 들어갔기 때문에 채권단 관리 아래 생존 여부가 결정됐다. 주채권은행은 외환은행이었고 산업은행과 우리은행, 조흥은행(현 신한은행) 등이 공동 채권단을 구성해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채권단은 신규 자금 지원과 출자전환, 만기 연장 등을 패키지로 제공하며 회생의 시간을 벌어줬다. 재무 지표는 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1999년 순이익 2243억원을 마지막으로 2000년대 초반 하이닉스는 2000~2003년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누적 적자는 11조원 이상이었다.
우 사장 앞에 놓인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마이크론으로의 매각 작업이 마지막 단계에서 하이닉스 이사회의 부결로 무산되자 하이닉스는 독자 생존의 길를 택해야만 했다. 회사 내부에서 직원들조차 그에게 '채권단에서 파견된 점령군', '반도체를 전혀 모르는 뱅커 출신 사장'과 같은 꼬리표를 붙였다. 하지만 우 사장은 특유의 친화력과 뚝심 경영으로 회사 안정화 작업에 돌입했다. 그의 첫 번째 판단은 회사를 쪼개 팔기보다 어떻게든 생존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무 관점에서는 채권 회수의 속도가 느려지는 결정이었지만 기술 경쟁력 기반을 그대로 유지하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우 사장은 비핵심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도 핵심 연구개발(R&D) 인력만은 최대한 유지했다. 반도체 제조 기술인 300mm(12인치) 웨이퍼 전환을 생존 전략의 중심에 놓은 것도 그의 판단이었다. 당시로서는 고비용·고위험 선택이었지만 이 전환은 웨이퍼 1장당 생산 비트를 대폭 늘려 비트당 원가를 구조적으로 낮추는 선택이 됐다.
신제품 개발생산에 필요한 R&D 및 새 장비 구입 투자 자금이 부족해 기존 장비를 일부 개조하고 그에 맞는 공정을 개발해 양산에 임하겠다는 위험 부담이 큰 '블루칩 프로젝트'가 주효했다. 위기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시도였지만 블루칩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1조원 이상의 투자 효과를 거둔 쾌거는 성공적인 기업 회생 사례로 큰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전환점은 2003년 이후였다. 글로벌 PC와 서버 수요 회복으로 D램 가격이 바닥을 찍고 회복을 시작했고, 하이닉스는 재무 부담이 완화된 상태였다. 2003년 말부터 손익이 반등해 2004년에는 1조692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2005년 매출은 약 6조970억원, 영업이익 2조240억원으로 구조조정 전 대비 이례적으로 빠른 실적 회복세를 보였다. 그렇게 하이닉스는 3년 9개월 만에 채권단 워크아웃 졸업하고 위기에서 벗어났다.
구조조정과 생산성 향상, R&D 투자 지속 등을 지휘하며 좌초 위기의 하이닉스를 세계 메모리 반도체 2위 회사로 부활시켰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대다수의 언론은 2005년 워크아웃 졸업을 "예정보다 1년 반 앞당긴 조기 정상화"라며 "클린 하이닉스"라고 평가했다. 한 매체는 "재무구조 개선과 기술 경쟁력 회복이 결합된 성공 사례"로 전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