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아내 몰래 낚싯대 사다 걸렸을 때 대처법에 대해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남색 카라티에 안경을 쓴 김종구 씨는 화이트보드 앞에서 자신만의 ‘인생 팁’을 털어놨다. 주제는 ‘아내 몰래 낚시대 샀다가 걸렸을 때 대처법’. 순식간에 조회수는 976만8000회를 기록했다. 김 씨는 화면에서 능청스럽게 “낚싯대가 10만원이면 100만원이라고 하는 거죠. 아내가 ‘무슨 100만원이나 하냐’고 물으면 ‘내가 100만원이라고 했어? 10만원이야. 미안해’라고 하는 식으로 10만원짜리 낚싯대는 별다른 의심 없이 넘어가게 하는 거죠”라며 나름의 ‘위기 대응’ 비법을 공유했다.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 중장년, ‘시청자’서 ‘창작자’로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은퇴 이후 경력을 새롭게 설계하거나 부업을 위해 유튜브·인스타그램 등에서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중장년이 늘고 있다. 김 씨처럼 특별한 스타도 아닌 중장년층이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인플루언서로 활약한다는 의미다.

평생 쌓아온 경험을 콘텐츠로 만들거나 생업에 쫓겨 미뤄둔 꿈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아내면서 구독자에게 공감과 대리 만족을 안겨준다. ‘생일에 아들한테 최신형 기기 받아내는 법’, ‘아는 척하는데 누군지 기억 안 날 때 꿀팁’ 등 일상 속 고민을 유머로 풀어낸 영상은 자녀 세대에게도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5월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50대 크리에이터 ‘문워킹’ 계정은 약 5개월만에 팔로어 4만9000명을 모았다. 그가 올린 콘텐츠 중 최고 조회수는 약 291만회. 권고사직으로 일을 그만두게 된 그는 직장인, 주부, 엄마 말고 자신만의 일을 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가 선택한 것은 여행 크리에이터. 꾸준히 콘텐츠를 올리자 최근엔 네이버 광고 제안도 들어왔다.
"며느리 첫 생일인데…" 73세 시어머니 영상 '400만뷰 잭팟'
중장년 크리에이터는 더 이상 소수 유명인들만의 영역에 그치지 않는다. 구독자 100만명 이상의 ‘메가 인플루언서’뿐 아니라 ‘나노(1만명 미만)·마이크로(1만~10만명 미만) 크리에이터도 주목받는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낸 ‘2025년 디지털크리에이터 활동현황 조사’에선 구독자 1만명 미만이 41.2%, 1만~10만명 미만이 38.4%에 달했다. 조사 대상인 1000명 중 79.6%가 10만 명 미만인 것이다.

중장년층의 소셜미디어 이용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한국경제신문이 와이즈앱·리테일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달 유튜브의 40대 이상 월간활성이용자(MAU)는 2376만4018명으로 전체의 51.5%를 차지했다. 페이스북은 448만4919명으로 40대 이상 비중이 58.5%에 달했다. 틱톡은 456만7912명(46%), 인스타그램은 1102만7985명(38.5%), 스레드는 272만9293명(32.5%), 엑스(X·옛 트위터)는 137만2819명(16.1%)이었다.

증가세도 가파르다. 지난달 스레드의 40대 이상 이용자는 1년 전보다 51.6% 늘었다. 틱톡은 44.3%, 엑스는 28.3%, 인스타그램은 9.1%, 페이스북은 6.5% 증가했다. 특히 고령층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틱톡의 60대 이상 이용자는 같은 기간 70만9382명에서 128만3336명으로 80.9% 급증했다. 스레드의 50대 이용자도 34만2494명에서 65만4916명으로 91.2% 늘었다. 인스타그램의 50대 이용자는 279만226명에서 339만617명으로 21.5% 증가했다.

◇ 중장년에 홀린 1030세대

젊은 층에서도 중장년 크리에이터에 대한 호감이 커지면서 콘텐츠 제작 환경도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 실제 크리에이터 가운데 중장년층이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하다. ‘2025년 디지털 크리에이터 활동현황 조사’에 따르면 40대가 20.3%, 50대 이상이 7.9%로 40대 이상 비중이 28.2%에 달했다. 크리에이터 10명 중 3명가량이 40대 이상인 셈이다.

국세청 자료에서도 40대 이상 1인 미디어 창작자는 2020년 1312명에서 2024년 7042명으로 5.4배로 늘었다. 2024년 전체 신고자 3만4806명 중 20.2%에 해당한다. 40대 창작자의 연평균 신고 수입은 8675만원으로 전체 평균(약 7100만원)을 웃돌았다.

중장년 크리에이터의 성패를 수익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36년간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고 은퇴한 엄미숙 씨(73)는 “처음부터 인플루언서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모델 활동을 기록하려고 시작한 인스타그램 계정은 팔로어 4만 명을 넘겼다. 며느리의 첫 생일에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지 의견을 구한 영상은 약 400만 회, 자라에서 처음 쇼핑한 영상은 약 253만 회를 기록했다. 현직 시절에는 데이트할 시간도 없던 부부가 은퇴 뒤 맛집과 찻집을 다니는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는 조회수가 약 220만 회에 이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4년부터 순차적으로 법정 정년인 60세에 진입하는 2차 베이비붐 세대(1964~1974년생)는 올해 954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8.6%를 차지했다. 시니어 크리에이터 교육기관 더뉴그레이클럽은 “5060 시니어 시장은 규모도 큰 시장인데 정작 이들이 주인이 돼 만드는 콘텐츠 수는 적다”며 “많은 유통업체가 팬덤 비즈니스에 힘을 주고 있는 상황인 만큼 5060 시니어 시장이 커질수록 중장년 크리에이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박수빈/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