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29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지난 6월 병실에서 웃으며 퇴원 후 만남을 기약했던 '국민 아버지'를 동료와 시청자들은 작품 속 모습과 목소리로 추모했다.

약 4개월 전 병문안을 갔던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최불암에게서 술 한잔하자는 약속을 받았다. 아내인 배우 김민자가 함께한 자리에서 고인은 세상사부터 예술과 종교까지 화제를 넓혀가며 방문객을 격려했다.

당시 최 장관은 SNS에 "특유의 '파하' 웃음으로 반갑게 맞아주셔서 무척 많이 안심이 되었습니다"라며 "머잖아 퇴원하면 술 한잔 하자고도 하셨습니다"라고 적었다. 회복을 기다리게 했던 이 일화는 비보와 함께 다시 전해졌다.

팝페라 가수 임형주에게도 병실에서 나눈 인사가 마지막 만남이 됐다. 최불암·김민자 부부와 교류해온 그는 30일 인스타그램에 "몇 달 전 병문안에서의 인사가 영원한 작별 인사가 될지 몰랐다"고 썼다. 자신의 노래를 아끼고 독창회를 찾아 격려했던 고인에게 "수많은 국민 여러분께 따스한 아버지가 되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작별 인사를 건넸다.

추모글에는 저마다의 기억 속 최불암이 등장했다.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 TV에서 보던 형사였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족과 저녁을 먹으며 만나던 농촌의 아버지였다. 전국의 밥상을 찾아가 사람들의 사연을 들려주던 목소리를 떠올리는 시청자도 많았다.

작곡가 윤일상은 "'수사반장'의 정의로운 반장님으로, '전원일기'의 따뜻하고 든든한 아버지로, 선생님은 오랜 세월 우리 삶의 한 부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한 시대를 연기하신 분이 아니라, 한 시대를 함께 살아주시고 우리 모두의 마음에 온기를 남겨주신 분이셨다"고 애도했다.

온라인에서도 "양촌리 김 회장님, 편히 쉬소서. 한 시절 행복했다", "파하 웃음소리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은데" 등의 글이 이어졌다. '한국인의 밥상' 시청자들은 "내레이션으로 들려오는 최불암 선생님의 목소리가 너무나 위안이 됐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배역의 이름과 웃음소리, 내레이션이 고인을 기억하는 말이 됐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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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은 전날 밤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3월 허리디스크 수술 이후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방송 활동을 중단했고, 재활에 힘써왔으나 최근 건강이 급격히 악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부터 14년간 진행한 KBS 1TV '한국인의 밥상'에서도 지난해 하차했다. 지역 음식의 유래를 짚고 그 음식을 지켜온 사람들의 삶을 듣던 프로그램이다. 오랜 시간 쌓인 친근함은 고인이 화면을 떠난 뒤에도 시청자들이 복귀를 기다리는 이유였다.

올해 5월 MBC가 그의 연기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파하, 최불암입니다'를 방송했을 때도 최불암은 직접 출연하지 않았다. 재활치료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가족의 요청에 따른 결정이었다. 다큐멘터리 공개 약 5개월 만에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고인이 대중과 만난 시간은 67년에 이른다. 1939년 인천에서 태어나 1959년 연극 '햄릿'으로 데뷔했고, 국립극단을 거쳐 TV로 활동 무대를 넓혔다. 20대에 드라마 '수양대군'의 노년 김종서를 맡을 만큼 일찍부터 나이 든 인물을 연기했다.

그의 이름 앞에 '국민 아버지'라는 수식어를 붙인 작품은 '전원일기'였다. 양촌리 김 회장은 집안의 어른이면서 마을 사람들의 사정을 살피는 인물이었다. 김혜자와 22년간 부부로 호흡을 맞추면서 두 사람을 실제 부부로 여기는 시청자도 적지 않았다.

'수사반장'의 박영한 반장은 또 다른 대표 얼굴이다. 범죄를 수사하는 형사이면서 사건 뒤에 놓인 사람과 사회를 돌아보는 인물로 오랫동안 시청자와 만났다. 최불암은 2024년 '수사반장 1958'에 특별 출연해 다시 박 반장의 이름으로 화면에 섰다.

장수 드라마의 익숙한 얼굴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에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연기했고,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바람불어 좋은날', '기쁜 우리 젊은 날' 등에도 출연했다. 드라마와 영화, 연극을 오가며 쌓은 활동으로 2014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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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사랑받은 배역이 있었지만, 정작 그는 익숙한 연기를 경계했다. 2006년 대담에서는 "한 인물의 배역이 끝나면 빨리 잊어버리고 타성적 연기와 관습적 캐릭터를 깨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인물을 받아들이려면 배우 자신부터 비워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연기의 출발점으로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꼽았다. 2001년 '전원일기' 1000회를 맞아 진행한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좋은 배우가 되려면 사람을 연구해야 하고, 그러려면 자신이 먼저 사람이 돼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방송이 어떤 사람을 보여줘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소신이 분명했다. 자극적인 사랑과 배신에 치우친 드라마 풍토를 두고는 "드라마가 재미만 추구하면 안 된다. 드라마로 쓴맛도 봐야지, 단맛만 봐서야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재미와 함께 사회를 돌아볼 책임이 방송에 있다는 주문이었다.

화면 밖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후원을 이어갔다. '전원일기'의 금동이 입양 에피소드를 계기로 나눔에 참여한 그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 등을 맡았다. 2015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는 "진정한 봉사는 비 맞고 있을 사람에게 우산을 받쳐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람"이라고 했다.

후배들에게 남긴 말도 자신이 걸어온 길과 맞닿아 있었다. 2024년 '수사반장 1958' 출연 배우들을 만난 최불암은 "국민이 가야 할 길 위에 가시덤불이 있으면 그걸 치우는 게 광대 정신"이라며 "나 역시 그러지 못한 여한이 남아 여러분이 대신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장례는 이러한 활동을 기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진다.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는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유족으로는 아내 김민자와 아들 동녘, 딸 동비 씨가 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