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추석 밥상
추석 밥상에는 햅쌀향이 은은하게 흐른다. 밥도 떡도 새 쌀로 짓고 빚기 때문이다. 한가위 대표 음식인 송편의 원래 이름은 ‘오려송편’이다. ‘오려’란 제철보다 일찍 여무는 올벼를 뜻한다. 송편이란 이름은 떡 사이에 솔잎을 깔고 찐다는 의미로, 소나무 송(松)과 떡 병(餠)을 붙여 부르던 데서 유래했다. 송편에는 햅쌀과 솔잎 향이 함께 배어 있다.

추석에는 달도 둥글고, 과일도 둥글고, 마음도 둥글어진다. 그런데 송편은 왜 반달 모양일까. 중국이나 일본의 달떡(月餠)이 모두 둥근 것과 대조적이다. 여기에는 점점 기울어지는 보름달보다 앞으로 가득 차오를 반달을 중시한 우리 조상들의 우주관이 담겨 있다.

옛날에는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지냈다. 노천명 시 ‘장날’에 나오듯이 아버지는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새벽에 떠났다가 ‘송편 같은 반달이 싸릿문 위에 돋고’ 나서 돌아왔다. 장바구니 속에서 고깔과자며 때때옷이 나올 때마다 아이들은 보름달처럼 환하게 웃었다.

요즘은 이런 풍경을 볼 수 없다. 차례 음식도 가정간편식으로 간소하게 차린다. ‘추석 상세트’가 17만원 정도라니 전통시장의 추석 상차림 비용인 23만원보다 30%나 저렴하다. 조리가 까다로운 동태전과 해물동그랑땡, 재료 손질에 손이 많이 가는 나물류 볶음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1·2인 가구가 늘고 ‘명절은 쉬는 날’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생긴 변화다. 온라인쇼핑몰의 설문조사 결과 3040세대 남녀의 45%가 명절 음식으로 가정간편식을 활용한다고 답했다. 예전처럼 송편 빚느라 밤잠을 설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아낀 시간만큼 밥상머리 대화가 늘어난다.

올 추석 밥상에서도 온갖 대화가 오갈 것이다. 젊은이들이 지겨워하는 취직, 결혼, 임신 얘기에 이어 정치 담론까지 다양한 화제가 이어질 것이다. 어떤 이는 ‘한반도 평화’를 얘기할 것이고 어떤 이는 ‘일자리 지옥’ 문제를 얘기할 것이다. 최근 이상 과열 현상을 보인 부동산 문제도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여야 정치인들은 추석 연휴가 시작된 어제부터 귀성인사를 하며 ‘밥상 민심’을 사기 위해 분주히 다녔다. 정치인들의 현란한 수사와는 달리 주머니 얇은 서민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먹고사는 문제다. 일자리가 늘고 벌이가 좋아져야 가계소득이 증가하고 분배지표도 호전된다.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그저 ‘희망 고문’에 불과한 말들만 넘친다면 모처럼의 가족 밥상이 초라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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