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라이벌' 대상-CJ제일제당, 한여름 김치전쟁
계속되는 폭염 속에 마트에선 ‘김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여름은 포장김치의 성수기다. 2위 업체인 CJ제일제당이 올해 포장김치 특수를 겨냥해 대대적인 할인 공세를 벌이자 1위 업체인 대상이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맞불을 놓고 있다. 50여 년 전 ‘미원(대상)과 미풍(제일제당)의 조미료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는 말도 나온다.

‘대상 vs CJ’ 한 달 내내 김치 할인전

9일 이마트에 따르면 포장김치는 지난달 26일부터 할인판매를 하고 있다. 할인폭도 30%에 이른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 포기배추김치 더 풍부한 맛’(3.5㎏)은 32% 할인한 2만800원에 판매 중이다. 대상의 ‘종가집 여름 포기김치’(5.8㎏)도 이에 뒤질세라 3만1800원으로 29% 할인한 가격에 진열대에 올라 있다.

'50년 라이벌' 대상-CJ제일제당, 한여름 김치전쟁
업계에선 “올여름 2차 김치 전쟁”이라고 부른다. 할인 경쟁은 지난달 초 시작됐다. 대상과 CJ제일제당은 지난달 둘째주에도 포장김치 가격을 일시적으로 낮춰 팔았다. 당시 대상은 ‘종가집 전라도 포기김치’(3.5㎏) 가격을 28% 할인했고, CJ제일제당 역시 ‘즐거운 동행 열무물김치’(1㎏)와 ‘비비고 포기배추김치’(2.5㎏)를 각각 29%, 25% 할인했다. 배추김치뿐 아니라 물김치와 열무김치로도 확전되는 양상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올여름엔 거의 모든 포장김치가 할인 판매되고 있다”고 전했다. 대상 관계자는 “CJ제일제당의 비비고 김치가 할인에 들어간다는 정보를 들으면 바로 할인으로 맞대응하고 있다”고 했다.
'50년 라이벌' 대상-CJ제일제당, 한여름 김치전쟁
CJ의 공격적 마케팅에 대상의 방어전

올여름 포장김치 시장이 양사의 자존심 대결장이 됐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대상이 전통적 강호이던 포장김치 시장에 CJ제일제당은 최근 몇 년 사이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CJ제일제당이 김치 사업을 시작한 건 1990년대 ‘CJ햇김치’를 내놓으면서다. 그러나 대상의 ‘벽’은 넘보지 못했다. 돌파구를 찾던 CJ제일제당은 2007년 ‘하선정 김치’를 인수했다. 하선정 김치의 노하우를 토대로 2016년 비비고 브랜드 김치를 출시하면서 공세로 전환했다.

시장조사회사인 닐슨에 따르면 5년 전인 2013년 CJ제일제당의 포장김치 시장 점유율은 8.3%에 불과했다. 그러나 비비고김치를 내놓은 2016년 19.8%로 높아졌고, 작년엔 28.1%로 큰 폭으로 점유율이 뛰었다. 올 상반기엔 30%(31.4%)를 넘겼다. 같은 기간 대상의 시장 점유율은 59.7%에서 49.8%로 낮아졌다.

“포장김치 시장 갈수록 더 커질 것”

50여 년 전 조미료 시장을 놓고 숙명의 라이벌 대결을 벌인 대상과 CJ제일제당이 이제 김치를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국내 조미료 시장은 1956년 미원(현 대상)이 나오면서 시작됐다. 7년 뒤 제일제당(현 CJ제일제당)이 미풍을 들고 나오며 참전했다. ‘부동의 1위’ 미원을 미풍이 추격하는 모양새였다. 지금의 김치 시장과 같은 구도다. 이 과정에서 금반지 등 대대적인 경품전을 벌이고 영업직원들 간 몸싸움이 일기도 했다. 조미료 전쟁은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삼성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세상에서 내 맘대로 안 되는 세 가지. 자식농사와 골프, 그리고 미원”이라고 언급했을 정도였다.

포장김치 시장에서 대상과 CJ제일제당이 각축전을 벌이면서 3~4위 업체인 동원F&B와 풀무원 등은 존재감이 더욱 희미해졌다. 시장조사회사인 링크아즈텍에 따르면 동원F&B의 양반김치 시장 점유율은 올 상반기 1.6%에 불과했다.

1인 가구와 맞벌이 가정이 많아지고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포장김치 시장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2014년 1402억원이었던 소매점 포장김치 시장은 작년엔 2129억원으로 불어났다. 올 들어선 두 자릿수(11~19%) 성장이 예상된다. 상반기 시장 규모는 1년 전보다 15% 안팎 더 커졌다. 대상과 CJ제일제당 관계자들은 “국내 시장에서 승기를 잡은 뒤 수출에 주력하면서 포장김치 시장을 넓힐 것”이라고 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