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EO & Issue focus] 글로벌 4위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 혹 탄 CEO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株主 자본주의·성과주의 중시
M&A로 승승장구…성장 이끌어
퀄컴 인수 시도하면서 유명세
M&A로 승승장구…성장 이끌어
퀄컴 인수 시도하면서 유명세
혹 탄 브로드컴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미국 100대 상장기업 CEO 중 최고액인 1억320만달러(약 1100억원)의 연봉을 받아 화제다. 브로드컴은 스마트폰과 노트북PC의 와이파이 칩셋을 비롯해 블루투스와 위성항법장치(GPS) 등에 쓰이는 유무선 통신 관련 반도체 분야 강자다. 매출액 기준으로 세계 반도체업계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든다.
혹 탄 CEO가 더 큰 기업이나 탁월한 실적을 낸 경영자들을 제치고 최고 연봉을 받은 것은 싱가포르의 이름 없는 회사를 글로벌 반도체업계의 거인으로 성장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초 브로드컴이 퀄컴 인수를 시도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퀄컴은 이동통신 칩과 스마트폰의 두뇌라 할 수 있는 모바일AP 시장의 최강자로 삼성전자와 인텔에 이어 반도체업계 3위 기업이다. 브로드컴은 반도체업계 인수합병(M&A) 사상 최대인 1000억달러 이상을 동원해 자신보다 덩치가 큰 퀄컴을 인수하려 했지만 미 정부의 승인 거부로 좌절됐다.
1100억원 연봉의 기업사냥꾼
혹 탄이 최고 연봉 CEO가 된 비결은 지난 10여 년간 끊임없이 M&A를 성공시키면서 회사 주가를 끌어올린 덕분이다. 그는 2005년 미국계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실버레이크 파트너스가 인수한 싱가포르 반도체 회사인 아바고 경영진으로 영입됐다.
아바고에 합류한 이듬해 CEO 자리에 오른 그는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기업사냥에 나섰다. 2013년 광학·반도체 기업 사이옵틱스를 4억달러에 인수했고 2014년에는 66억달러를 들여 반도체 기업 LSI로직스를 흡수합병했다. 2015년엔 네트워크 장비업체 에뮬렉스를 6억달러에 손에 넣으며 덩치를 더 키웠다. 2016년엔 당시로선 사상 최대였던 370억달러 규모의 브로드컴 인수합병에 성공했다. 회사 문패도 이때 아바고에서 브로드컴으로 바꿨다.
인수합병에 성공할 때마다 주가가 뛰었다. 2009부터 2017년까지 브로드컴(아바고) 주가는 14배나 상승했다. 매출은 매년 49%씩 늘어났다. 뉴욕 투자은행 코웬의 애널리스트 칼 애커먼은 “혹 탄은 강력한 의지와 기회를 포착하는 동물적 감각으로 틈새 반도체 제품을 찾아내 시장을 키우는 성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미국 MIT 공대와 하버드 비지니스스쿨을 졸업한 그는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 효율화에 힘을 쏟았다. 브로드컴 인수 후 곧바로 사물인터넷(IoT) 부문과 와이파이, 블루투스, 지그비 등의 통신 관련 지식재산권을 사이프레스반도체에 5억5000만달러에 매각했다. 비주력 사업을 정리해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기업문화도 철저히 성과주의 중심으로 재편했다. 성과를 가져오는 직원에겐 합당한 보상을 했지만 목표에 미달하는 직원을 냉정하게 정리했다. 혹 탄은 언론 인터뷰에서 “기업이 행정이나 인사·법무 등 후선 업무에 10%의 비용을 쓴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비용을 1%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노력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쓰라린 경험’ 퀄컴 M&A 실패
성공을 거듭했던 혹 탄의 리더십은 지난 3월 퀄컴 인수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반도체업계 4위인 브로드컴은 작년 11월부터 업계 3위인 퀄컴 인수에 공을 들였지만 실패했다. 인수액으로 1460억달러(부채 250억달러 포함)를 제시했으나 퀄컴의 동의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자금력을 무기로 적대적 인수합병까지 시도했지만 이번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승인을 거부했다.
퀄컴이 인수합병을 강하게 반대한 데는 혹 탄 CEO의 냉혹한 경영 방식에 대한 불만도 영향을 미쳤다. 주가를 끌어올려 사모펀드 주주들을 만족시켰지만 강력한 구조조정을 일삼으면서 기업의 장기 성장동력을 훼손해왔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아바고가 브로드컴 인수했을 때 사업부 통폐합으로 전 세계에서 1900명의 직원이 직장을 잃었고 지난해 말 샌프란시스코 브로케이드커뮤니케이션을 인수한 뒤에도 300여 명을 해고했다. 작년 말 실리콘밸리 공연에서 코미디언 웨인 브레디는 “오늘 밤에도 혹 탄의 위협에 시달리는 크고 작은 기업 임직원들이 많이 오셨네요”라고 농담했을 정도다.
혹 탄의 주주자본주의 경영 방식은 미국 정부의 반감까지 샀다. 만약 브로드컴이 퀄컴을 인수한 후 경비 절감을 이유로 연구개발(R&D) 인력과 예산을 감축하면 중국과의 5세대(5G) 이동통신 경쟁에서 미국이 뒤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혹 탄이 중국계 미국인이라는 점과 브로드컴이 화웨이 등 중국 기업과 협력관계라는 점도 덩달아 논란이 됐다. 미국 공화당의 존 코닌 상원의원(텍사스주)은 “적대적 인수합병을 인가한다면 미국이 스스로 차세대 이동통신 열차에 중국인 운전사를 태우는 꼴이 된다”며 “중국 공산당에 신세를 지고 있는 중국 회사의 거래를 승인하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분야로 눈돌리는 혹 탄
브로드컴 측은 국적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본사를 싱가포르에서 미국으로 옮겼다. 그러면서 미국 혹은 다국적 회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혹 탄은 작년 11월 백악관에 초대받아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자신이 말레이시아 화교 출신이지만 미국 교육제도 혜택을 받고 성공한 미국인임을 강조했다.
그는 “내 어머니는 당신의 아들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미국 대통령 앞에 서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부모님은 나를 MIT는커녕 말레이시아대학에도 보낼 형편이 안 됐지만 운이 좋게도 나는 미국 교육제도의 혜택을 받아 아메리칸 드림을 쫓을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퀄컴 인수에 실패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미국식 성공 방정식’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 같은 시련에도 혹 탄은 특기를 살려 제조업이 아닌 다른 분야로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브로드컴은 지난달 11일(현지시간) 189억달러(약 21조3249억원)에 소프트웨어 기업인 CA테크놀로지스를 인수하기로 했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CA는 메인프레임 컴퓨터 등 기업용 정보기술(IT) 인프라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판매한다. 미국 당국의 승인 절차가 남아있지만, 브로드컴은 이번 인수를 바탕으로 제조업이 아닌 소프트웨어산업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혹 탄 CEO가 더 큰 기업이나 탁월한 실적을 낸 경영자들을 제치고 최고 연봉을 받은 것은 싱가포르의 이름 없는 회사를 글로벌 반도체업계의 거인으로 성장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초 브로드컴이 퀄컴 인수를 시도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퀄컴은 이동통신 칩과 스마트폰의 두뇌라 할 수 있는 모바일AP 시장의 최강자로 삼성전자와 인텔에 이어 반도체업계 3위 기업이다. 브로드컴은 반도체업계 인수합병(M&A) 사상 최대인 1000억달러 이상을 동원해 자신보다 덩치가 큰 퀄컴을 인수하려 했지만 미 정부의 승인 거부로 좌절됐다.
1100억원 연봉의 기업사냥꾼
혹 탄이 최고 연봉 CEO가 된 비결은 지난 10여 년간 끊임없이 M&A를 성공시키면서 회사 주가를 끌어올린 덕분이다. 그는 2005년 미국계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실버레이크 파트너스가 인수한 싱가포르 반도체 회사인 아바고 경영진으로 영입됐다.
아바고에 합류한 이듬해 CEO 자리에 오른 그는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기업사냥에 나섰다. 2013년 광학·반도체 기업 사이옵틱스를 4억달러에 인수했고 2014년에는 66억달러를 들여 반도체 기업 LSI로직스를 흡수합병했다. 2015년엔 네트워크 장비업체 에뮬렉스를 6억달러에 손에 넣으며 덩치를 더 키웠다. 2016년엔 당시로선 사상 최대였던 370억달러 규모의 브로드컴 인수합병에 성공했다. 회사 문패도 이때 아바고에서 브로드컴으로 바꿨다.
인수합병에 성공할 때마다 주가가 뛰었다. 2009부터 2017년까지 브로드컴(아바고) 주가는 14배나 상승했다. 매출은 매년 49%씩 늘어났다. 뉴욕 투자은행 코웬의 애널리스트 칼 애커먼은 “혹 탄은 강력한 의지와 기회를 포착하는 동물적 감각으로 틈새 반도체 제품을 찾아내 시장을 키우는 성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미국 MIT 공대와 하버드 비지니스스쿨을 졸업한 그는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 효율화에 힘을 쏟았다. 브로드컴 인수 후 곧바로 사물인터넷(IoT) 부문과 와이파이, 블루투스, 지그비 등의 통신 관련 지식재산권을 사이프레스반도체에 5억5000만달러에 매각했다. 비주력 사업을 정리해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기업문화도 철저히 성과주의 중심으로 재편했다. 성과를 가져오는 직원에겐 합당한 보상을 했지만 목표에 미달하는 직원을 냉정하게 정리했다. 혹 탄은 언론 인터뷰에서 “기업이 행정이나 인사·법무 등 후선 업무에 10%의 비용을 쓴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비용을 1%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노력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쓰라린 경험’ 퀄컴 M&A 실패
성공을 거듭했던 혹 탄의 리더십은 지난 3월 퀄컴 인수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반도체업계 4위인 브로드컴은 작년 11월부터 업계 3위인 퀄컴 인수에 공을 들였지만 실패했다. 인수액으로 1460억달러(부채 250억달러 포함)를 제시했으나 퀄컴의 동의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자금력을 무기로 적대적 인수합병까지 시도했지만 이번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승인을 거부했다.
퀄컴이 인수합병을 강하게 반대한 데는 혹 탄 CEO의 냉혹한 경영 방식에 대한 불만도 영향을 미쳤다. 주가를 끌어올려 사모펀드 주주들을 만족시켰지만 강력한 구조조정을 일삼으면서 기업의 장기 성장동력을 훼손해왔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아바고가 브로드컴 인수했을 때 사업부 통폐합으로 전 세계에서 1900명의 직원이 직장을 잃었고 지난해 말 샌프란시스코 브로케이드커뮤니케이션을 인수한 뒤에도 300여 명을 해고했다. 작년 말 실리콘밸리 공연에서 코미디언 웨인 브레디는 “오늘 밤에도 혹 탄의 위협에 시달리는 크고 작은 기업 임직원들이 많이 오셨네요”라고 농담했을 정도다.
혹 탄의 주주자본주의 경영 방식은 미국 정부의 반감까지 샀다. 만약 브로드컴이 퀄컴을 인수한 후 경비 절감을 이유로 연구개발(R&D) 인력과 예산을 감축하면 중국과의 5세대(5G) 이동통신 경쟁에서 미국이 뒤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혹 탄이 중국계 미국인이라는 점과 브로드컴이 화웨이 등 중국 기업과 협력관계라는 점도 덩달아 논란이 됐다. 미국 공화당의 존 코닌 상원의원(텍사스주)은 “적대적 인수합병을 인가한다면 미국이 스스로 차세대 이동통신 열차에 중국인 운전사를 태우는 꼴이 된다”며 “중국 공산당에 신세를 지고 있는 중국 회사의 거래를 승인하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분야로 눈돌리는 혹 탄
브로드컴 측은 국적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본사를 싱가포르에서 미국으로 옮겼다. 그러면서 미국 혹은 다국적 회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혹 탄은 작년 11월 백악관에 초대받아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자신이 말레이시아 화교 출신이지만 미국 교육제도 혜택을 받고 성공한 미국인임을 강조했다.
그는 “내 어머니는 당신의 아들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미국 대통령 앞에 서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부모님은 나를 MIT는커녕 말레이시아대학에도 보낼 형편이 안 됐지만 운이 좋게도 나는 미국 교육제도의 혜택을 받아 아메리칸 드림을 쫓을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퀄컴 인수에 실패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미국식 성공 방정식’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 같은 시련에도 혹 탄은 특기를 살려 제조업이 아닌 다른 분야로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브로드컴은 지난달 11일(현지시간) 189억달러(약 21조3249억원)에 소프트웨어 기업인 CA테크놀로지스를 인수하기로 했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CA는 메인프레임 컴퓨터 등 기업용 정보기술(IT) 인프라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판매한다. 미국 당국의 승인 절차가 남아있지만, 브로드컴은 이번 인수를 바탕으로 제조업이 아닌 소프트웨어산업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