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소비 등 경기가 급속히 가라앉으면서 일감을 못 잡은 건설장비와 물류트럭들이 31일 서울 강서구 서부트럭터미널에 늘어서 있다.  신경훈 기자 hkshin@hankyung.com
투자, 소비 등 경기가 급속히 가라앉으면서 일감을 못 잡은 건설장비와 물류트럭들이 31일 서울 강서구 서부트럭터미널에 늘어서 있다. 신경훈 기자 hkshin@hankyung.com
지난 6월 산업생산이 석 달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설비투자는 18년 만에 가장 긴 감소세를 이어가는 등 경기 하강 신호가 뚜렷해지고 있다. 반도체 제조용 기계 수입이 점점 줄고 있고 사무실 등 비주거용 부동산 시장이 빠르게 침체되는 등 곳곳에서 투자 및 생산 부진을 알리는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비용을 줄이고 규제를 대폭 풀어 기업 스스로 투자에 나서도록 정책 방향을 획기적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부진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6월 全산업 생산지수 0.7% 감소

통계청이 31일 발표한 ‘2018년 6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전(全)산업 생산지수는 전달보다 0.7% 감소했다. 이 지수는 지난 3월 0.9% 감소했다가 4월(1.4%)과 5월(0.2%)에는 증가했는데 6월에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이다.

자동차와 화학제품 생산이 전달보다 각각 7.3%, 3.6% 줄어든 게 전산업 생산지수를 떨어뜨린 주요 원인이다. 어운선 통계청 산업동향과장은 “완성차 수출이 부진하고 자동차 부품도 국내외 수요가 모두 감소했다”며 “특히 소형 세단 등의 유럽 수출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생산·투자 곳곳서 '경고등'… 자동차 생산 줄고 건설 경기도 침체
자동차산업은 고용유발 효과가 커 침체에 빠질 경우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어 과장은 “화학제품은 태양광 관련 제품인 폴리실리콘의 중국 수출이 감소해 생산이 줄었다”며 “태양광 발전을 크게 늘리던 중국 정부가 최근 속도 조절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서비스업 생산은 전달에 비해 0.2% 증가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 음식·주점업 생산지수는 전월 대비 1.3% 감소했다. 4월(-0.5%)과 5월(-0.1%)에 비해 감소폭이 더 커졌다.

기업들 경기 하강 예측… 투자 축소

제조업 생산 부진이 이어지며 투자도 줄고 있다. 설비투자는 전달에 비해 5.9% 감소했는데, 특히 기계류 투자가 9.9% 줄어든 게 눈에 띈다. 기업들이 경기가 하강할 것으로 예측해 공장에 들어가는 설비에 투자를 줄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5월 7270만달러였던 반도체 제조용 기계 수입액이 6월 5680만달러로 22% 감소한 게 대표적이다. 작년 6월에는 9000만달러에 달했던 반도체 제조용 기계 수입액이 1년 만에 3분의 2 수준으로 준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3%(올해 1~5월 기준)에 이른다.

부동산 시장은 주택뿐 아니라 사무실 공장 점포 등 비주거용에서 공사와 수주가 모두 줄고 있다. 건설업체의 시공 실적을 보여주는 건설기성은 전월 대비 4.8% 감소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최근 사무실과 점포 등 비주거용 건물을 건설하려는 수요가 줄어 전체적인 시공 실적이 감소하고 있다”고 했다. 건설수주 역시 전달에 비해 18.3% 줄었다.

소매판매는 0.6% 증가로 돌아섰지만 ‘월드컵 반짝 특수’로 봐야 한다는 게 통계청 설명이다. 소매판매는 4월과 5월에 각각 0.9%, 1.1% 감소했다. 러시아월드컵은 6월 중순부터 한 달간 열렸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투자가 급격히 줄고 있다는 것은 국내 경기가 하강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화와 규제 개혁 등 기업 투자를 늘릴 만한 정책을 내놓지 못하면 하강곡선이 더 가팔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훈/김일규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