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광물 수출을 제한하고 금융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의 대북 결의안 2321호를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지난해 3월에는 중국이 북한산 석탄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등 제재 강도가 더해졌다. 당시 “이 같은 제재에도 북한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는 미온적인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20일 내놓은 지난해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에는 북한이 제재 속에서 얼마나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받았는지가 여실히 나타났다.

제재가 본격화되고 1년 뒤인 올해 3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을 ‘결속(종료)’하고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새로운 전략노선을 채택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경직됐던 남북한 관계는 급물살을 탔다.

4월과 5월 남북 정상회담이 잇따라 판문점에서 열리고, 6월에는 미·북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개최됐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올해 갑작스럽게 유화 노선으로 돌아선 것은 북한의 경제 사정이 급속도로 악화된 점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對北제재 1년새 경제 휘청… 김정은 '협상 테이블' 나온 이유 있었다
◆제재 1년 만에 경제 전체 흔들

지난해 북한의 성장률(-3.5%)은 대규모 기근에 시달린 1997년의 -6.5% 이후 20여 년 만에 최악의 성적이다. 주요 산업 대부분이 크게 악화됐다. 산업별로 농림·어업(-3.5%), 광업(-11.0%), 중화학공업(-10.4%) 등 주요 산업 생산이 역대 최악의 감소폭을 나타냈고 건설업(-4.4%), 전기가스수도업(-2.9%) 등 인프라 관련 산업도 줄줄이 악화됐다.

경기 악화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대외교역 축소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북한의 대외교역은 55억5000만달러로 전년의 65억3000만달러보다 15.0% 감소했다. 특히 수출이 37.2% 줄었다. 석탄 등 북한의 주력 수출품목인 광물성 생산품은 무려 55.7% 감소했다.

지난해 남북 교역도 전년 대비 99.7% 급감했다. 2016년 개성공단의 폐쇄조치 이후 남북 교역이 사실상 전면 중단된 데 따른 것이다. 2015년만 해도 27억1400만달러에 달하던 남북 교역 규모는 이듬해 3억3200만달러로 급감했고 지난해에는 90만달러 수준에 그쳤다. 그나마도 민간 차원의 인도적 지원 물품이 북한에 반입된 데 따른 것이다.

남북의 경제규모 차이는 더 벌어졌다. 한은은 북한의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을 146만원 수준으로 추정했다. 한국(3363만원)의 23분의 1 수준이다.

◆가뭄으로 전력사정도 악화

전문가들은 지난해 이례적인 북한 경제 악화의 원인으로 대북제재와 가뭄, 전년도 고성장에 따른 기저효과 등을 꼽고 있다. 특히 대외교역 축소는 대부분 대북제재에 기인한 것이란 분석이다.

한 대학 북한학과 교수는 “2016년까지는 글로벌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민생 목적의 거래라는 명목으로 북한산 석탄을 무더기로 수입해 사실상의 제재 효과를 내기 어려웠다”며 “하지만 지난해 중국이 제재에 본격적으로 동참하자 북한의 석탄 생산이 급감했고 그에 따른 연쇄작용으로 제조업이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농림·어업의 침체는 가뭄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농촌 지역마다 중소형 수력발전소를 지어 농업용수 공급에 필요한 전기를 생산한다. 하지만 가뭄으로 강수량이 크게 줄면서 전기 사정이 악화됐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북한의 지난해 성장률 -3.5% 중 -2.5%포인트가량은 대북제재 효과, 나머지 -1%포인트가량은 가뭄과 기저효과에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며 “김정은 위원장이 잇따라 산업 현장을 찾아 현지지도에 나서는 등 경제 살리기를 시도했지만 경기 침체가 가속화하자 결국 제재 완화를 위해 남북 관계의 국면 전환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