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양극화 원인'이라는 여당 원내대표… 속내는 낙수효과 유도?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사진)의 지난 13일 “삼성이 20조원 풀면…” 발언이 거센 후폭풍을 불러오고 있다. 홍 원내대표는 자신의 발언에 대한 논란이 일자 다음날 “부의 양극화 사례로 얘기한 것일 뿐”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기업=약탈자’라는 현 정부의 기업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란 비판이 또다시 제기되면서 오히려 논란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부 언론의 과민반응”이라는 해명도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5류가 1류를 가르치나”

이날 홍 원내대표는 한국여성경제포럼에서 삼성을 겨냥해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협력업체를 쥐어짜 1등 기업이 된 삼성이 20조원만 풀면 200만 명에게 1000만원씩 줄 수 있다’는 게 골자다. 여론의 반발 수위는 예상보다 거셌다. 한 네티즌은 “(홍 원내대표 말대로라면) 모든 기업이 쥐어짜기 연구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홍 원내대표는 다음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진화에 나섰다. “삼성을 언급한 것은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설명하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제기된 재벌해체론에 대해선 “(20조원 분배는) 구체적인 제안이 아니다”며 “거위의 배를 가르자는 게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홍 원내대표는 “삼성의 20조원에 대해선 평소 갖고 있던 의문”이라며 “후계 승계에 활용하거나 기존 주주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해 지난 3년간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소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민 경제에 기여하는 효과가 크게 없었다”며 “20조원은 112만 명 잠재 실업자에게 1년간 직업훈련을 시킬 수 있는 돈”이라고 주장했다.

이병태 KAIST 경영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5류(정치인)가 1류(글로벌 기업)에게 훈계하는 기막힌 상황”이라고 했다. 홍 원내대표를 겨냥해 “삼성전자를 당신이 몸담았던 대우자동차처럼 만들고 싶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해명이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는 셈이다.

◆여권의 ‘약탈적 기업관’ 비판도

홍 원내대표의 발언 의도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하다. 민주당 내에선 “말하기 좋아하는 ‘원대’의 작은 실수” 정도로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공식석상에서 특정 기업을 겨냥해 비판한 데엔 ‘노림수’가 있었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홍 원내대표는 평소에도 ‘국민 경제의 선순환을 위해 1000조원에 달하는 기업 사내유보금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식의 표현을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 핵심 인사들의 경제·기업관을 홍 원내대표가 대변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강조하며 현 정부 공정경제론의 틀을 만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도 “재벌이 기업의 전부라는 인식을 깨야 시장경제가 바로 선다”고 말한 바 있다. 대기업을 ‘약탈적 존재’로 바라보는 인식이다.

홍 원내대표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중소기업인을 폄하하는 발언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계열사를 자식이나 친인척에게 안겨주는 관행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강남에서 벤츠 타고 다니는 분들이 만날 죽겠다고 아우성’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경제계 관계자는 “신명 나게 일해도 모자랄 판에 기업인의 사기를 꺾는 말만 나오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했다.

◆부정했던 ‘낙수효과’ 꺼냈나

일각에선 경제 성장에 성과를 내기 위한 정부의 고민을 드러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이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혁신성장도 규제의 벽에 막히자 대기업에 보내는 특이한 ‘러브콜’이라는 것이다. 홍 원내대표는 지난달 27일 중견기업연합회 간담회에서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수직 상승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여러 가지 정책 수단이 필요하다”며 “임금이 많지 않아도 충분히 살 수 있도록 정부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증세가 필요하지만 반발이 만만치 않다”고 고충을 드러냈다. 정부 힘만으로는 ‘포용적 성장’을 달성하기 어려운 만큼 대기업의 자발적인 기여가 필요하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했다는 설명이다.

홍 원내대표는 14일 페이스북에 자신의 전날 발언을 해명하면서 “양극화 해소를 통해 지속가능한 경제 생태계를 만드는 게 정치가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며 “보수 정부에서 주장했던 낙수효과,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 혁신성장은 결국 그 고민에 대한 다른 답변들”이라고 말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실체를 부정했던 ‘낙수효과’를 다시 꺼내 든 것이다.

박동휘/박재원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