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트위터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친서(親書)를 전격 공개했다. 김정은의 친서 전달은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이 있은 지 한 달 만으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 6~7일 방북했을 때 전달받은 것이다.

김정은은 편지에서 비핵화 일정이나 핵시설 신고 등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멋진 편지”라며 “(미·북 관계에서) 대단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AP통신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관여 정책을 놓고 워싱턴에서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합중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각하’라는 제목의 편지는 한글과 영문 각 1장으로 돼 있다. 김정은은 편지에서 “두 나라의 관계 개선과 공동성명 이행을 위해 기울이고 있는 대통령 각하의 열정적이며 남다른 노력에 깊은 사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통령 각하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과 신뢰가 앞으로의 (공동성명) 실천 과정에 더욱 공고해지기를 바라며 조·미 관계 개선의 획기적인 진전이 다음번 상봉을 앞당겨주리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북한은 지난 7일 폼페이오 장관이 평양을 떠나자마자 외무성 성명을 통해 “미국이 ‘강도처럼’ 일방적으로 비핵화만 요구했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번 친서는 외무성 성명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로, 미리 작성돼 폼페이오 장관 출국 전 전달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멋진 편지라고 했지만 김정은의 친서에는 북한이 비핵화를 향해 어떠한 조치를 하겠다는 언급이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미·북 정상회담 후 한 달이 돼가도록 공동성명 이행사항, 즉 △비핵화 일정표 △핵시설 신고 △미군 유해 송환 등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

더구나 김정은은 친서에서 ‘조·미 관계 개선의 획기적 진전’이 있어야 2차 미·북 정상회담 일정이 당겨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고받기식이 아니라면 비핵화를 약속한 공동성명 이행이 어렵다는 ‘압박’ 성격이 짙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편지를 공개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은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김정은과의 신뢰 구축을 강조함으로써 폼페이오 장관의 ‘빈손 방북’ 논란을 잠재우려는 의도라는 풀이가 나온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들은 “미·북 후속회담은 미국이 어떤 양보카드를 내느냐에 달려 있다”며 “그런 카드를 내놓는 순간 퍼주기 논란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매우 조심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종전선언 카드를 먼저 쓴다면 8월 말까지 비핵화 일정표 등을 받고 연내 가시적 비핵화 조치를 시작하는 계기를 마련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방북 기간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비핵화) 약속을 했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지금 과업은 그것(비핵화)이 실행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