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의 원자력발전소 운영업체인 한국수력원자력이 사명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회사 이름에서 ‘원자력’을 빼는 방안이 유력하다. 정부의 탈(脫)원전 행보에 적극 발을 맞추기 위해서다.
社名에서 '원자력' 빼겠다는 한국수력원자력
한수원 관계자는 10일 “정부가 탈원전을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상황에서 공기업 사명에 원자력을 굳이 넣을 이유가 없다”며 “최고경영진이 조만간 바뀐 사명을 공개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수원의 사명 변경 추진은 2001년 3월 창사 이후 처음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차관보 출신인 정재훈 사장은 올 2월 취임 이후 탈원전 정책 시행에 앞장서왔다. 지난달 15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월성1호기 원전을 조기폐쇄한 게 대표적 사례다. 그는 외부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한수원은 더 이상 원전업체가 아니다. 종합 에너지기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소신을 수차례 밝혔다. 사장 직속의 ‘변화와 성장 태스크포스(TF)팀’을 신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 사장은 “10년, 20년 뒤 한수원의 모습을 상상하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력’ 비중이 눈에 띄게 작아진 점도 사명 변경을 추진하는 또 다른 배경이다. 한국전력 전력통계를 보면 국내 수력발전 비중은 작년 기준 1.3%에 불과하다. 2016년에는 공기업 간 기능 조정에 따라 한수원이 운영해온 수력발전 댐 10개의 위탁 운영을 한국수자원공사 측에 맡기기로 했다. 한수원은 종합에너지 기업임을 드러낼 수 있는 사명을 찾고 있다.

한수원은 정부 정책에 따라 원전 축소가 불가피한 만큼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나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지난달 딜로이트컨설팅에 ‘신사업 발굴’을 위한 용역을 맡겼다. 내부 조직인 변화와 성장 TF팀과 딜로이트가 공동으로 신사업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짜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4차 산업 기술을 활용한 에너지 신사업, 수력 및 신재생 패키지 수출 등이 핵심 재편안 중 일부로 검토되고 있다.

한수원이 최근 단행한 조직개편도 ‘원자력 축소, 신재생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 이 회사는 종전 에너지신사업처를 신재생사업처로 확대 개편하면서 신재생 부문 인력을 이전보다 약 40% 확대했다. 태양광·풍력 등을 늘리지 않고선 원전 축소가 어렵다는 게 한수원 측 판단이다.

경기 화성에 국내 최대 규모인 100㎿짜리 수상태양광 발전설비를 건설하거나 영농병행 태양광 발전 시스템의 특허 획득에 나선 것도 사업 다각화의 일환이다. 부산 고리, 경북 영덕, 전남 영광 등 원전이 있는 지역 앞바다에는 대규모 해상풍력 단지를 별도로 개발할 계획이다. 원전 인근에 자리잡은 변전소를 활용할 수 있는 데다 장기적으로 각 원전 폐로에도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해서다.

한수원 관계자는 “임직원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재교육에 나서는 한편 과거엔 없던 외부 경력직을 충원하는 등 충격 요법도 동원한다는 게 내부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한수원의 급격한 변화를 걱정하고 있다. 국내에서 24기 원전을 독점 운영해온 한수원의 전문성이 희석될 것이란 우려다. 신재생 발전원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재정이 악화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수원 부채는 지난 3월 말 29조8153억원으로, 1년 전보다 2조8000억원 이상 증가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