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용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아 온 배임죄 조항이 또 논란을 빚고 있다. 검찰이 배임 혐의로 기소했던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이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으면서다. 정 전 회장은 부실기업을 고가에 인수토록 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로 기소됐지만 1,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까지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지난 4월엔 이석채 전 KT 회장도 배임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형법은 355조2항을 통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주로 회사)에게 손해를 가하는 죄’를 배임죄로 규정하고 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는 배임 행위의 피해액에 따라 더 강도 높은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타인의 사무’,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 등 범죄 구성요건이 모호해 법 적용이 남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 검찰은 처벌이 쉽다는 이유 등으로 기업인들을 기소할 때 배임죄를 끼워넣는 사례가 적지 않다. 법 규정이 분명치 않다 보니 법원에서도 엇갈린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최근 법원은 정 전 회장 사건에서 보듯이 ‘기업인의 경영상 판단’을 존중하는 쪽으로 법 해석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자의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배임죄는 모호성으로 인해 신규 투자 등 기업의 과감한 의사결정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경제계는 물론 국회와 법조계 일각에서도 배임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이들은 법 적용 범위를 분명히 하고, 처벌도 ‘명백히 고의로 손해를 끼친 경우’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영자가 공정한 절차를 거쳐 기업 이익을 위해 판단을 했다면, 손실이 발생했어도 형사상 책임을 묻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형법 개정안이 수차례 국회에 제출됐지만 논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배임이 인정되더라도 형사처벌이 아니라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형법상 배임죄를 두고 있는 나라는 한국 외에 독일과 일본뿐이지만, 두 나라는 ‘명백히 고의성이 있을 경우’에만 처벌을 한다. 배임죄가 기업인을 억압하고,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족쇄로 더 이상 오·남용돼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