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유가 인하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 원유 증산을 요청했으며 사우디도 이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우디는 구체적인 증산 규모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어 실제 미국이 원하는 만큼 석유 공급이 늘어날지는 미지수다.

"석유 하루 200만배럴 증산, 사우디 국왕이 동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방금 살만 사우디 국왕과 얘기를 나눴고, 이란과 베네수엘라의 혼란과 장애 때문에 (줄어드는 생산을 보충하기 위해) 원유 생산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아마도 (하루) 200만 배럴까지 될 것”이라며 “그가 동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름값이 너무 높다”고도 했다.

미국이 특정 국가에 석유 증산을 구체적으로 요청한 건 드문 일이라고 AP통신은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요청은 최근 유가 급등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이란 제재로 원유 공급이 줄어들 전망인 데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1일부터 늘리기로 한 증산량(하루 100만 배럴)이 시장 예상보다 적어 유가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지난달 29일 배럴당 74.15달러로 올라 2014년 11월 이후 최고가를 기록했다. 미국이 우방인 사우디와 공조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이란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는 의미도 있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국내 정치용 제스처’라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자동차협회에 따르면 미국의 2분기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3.78L)당 2.85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2.23달러보다 27.8% 상승했다. 2014년 4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에선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3달러에 근접하면 장거리 여행이 감소하면서 소비가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 항공사와 택배업계 수익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사우디는 트럼프 대통령과 살만 국왕의 통화 사실을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증산 목표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우디가 OPEC이 결정한 증산 규모와 별개로 미국의 증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들은 지난달 22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의를 열고 7월1일부터 하루 100만 배럴을 증산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사우디는 하루 생산량을 1000만 배럴에서 1080만 배럴로 80만 배럴 늘릴 계획이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