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환익 칼럼] 공기업의 氣를 살려야 할 때다
우리나라 공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에 육박하고 있으며, 그 비중은 계속 커지고 있다. 그런데 국내 공기업에 대한 평가는 해외에서보다 국내에서 더 박한 편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철밥통’ ‘비능률’ ‘무사안일’ ‘높은 부채비율’ 같은 것들이 지배적 이미지인 것 같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 품질, 통신 효율, 공항 서비스, 고속철도 운영, 공공주택 건설능력 그리고 지능형 도로 운영능력 등을 보유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해당 분야에서 최상급으로 평가받는 초우량 공기업도 다수 있다. 한 예로, 한국전력은 최근 2년간 포브스 선정 전기·가스 등 유틸리티 분야 1, 2등을 유지하고 있다.

공기업은 주로 국내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공공요금의 상방 경직성으로 인해 유가 등 요금 인상 요인이 있어도 그때그때 반영하지 못하는 탓에 부단히 해외시장 개척 노력을 해왔다. 물론 해외시장에서 항상 좋은 결과물을 내온 것은 아니지만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건설처럼 눈부신 성과를 낸 사례도 많다. 그래서 몇몇 우량 공기업은 국제 신용평가기관의 신용도 평가에서 최상위급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 공기업은 아직 많은 혁신이 필요하지만 그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해외에서의 브랜드 가치 등은 분명 소중한 국가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공기업이 민간기업과 다른 점은 단기적 수익성보다는 중장기적으로 국익에 부합하고 결국은 공기업에도 안정적인 수입원을 제공하는 투자를 해왔다는 것이다. 한전의 경우를 보자. 한전이 전기자동차 충전사업에 참여한 것은 지금 당장은 수익성이 떨어지지만, 충전소가 확충돼 전기자동차 판매가 늘어나면 전기 판매 수입 증가로 돌아올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경제의 화두는 지속 가능한 활력 회복과 경협을 통한 남북 간 공동 번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데, 공기업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 우선, 우리 경제 상황을 보면 대내외적으로 불안 요인이 커지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보호무역으로 인한 교역 위축 그리고 점증하는 국제 금융 불안이 해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고비용 구조가 고착화하면서 기업의 국제 경쟁력에 부담을 더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한 제조업 부문의 수익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고 이는 중소기업 부문의 경영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앞으로 북한에 대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대비해야 하고, 이를 우리 경제의 활로로 삼아야 한다. 실제로 많은 중소기업이 남북 경협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에 따라 대(對)북한 투자를 생각하는 중국과 유동성이 넘치는 일본 기업의 선제적 투자가 속도를 낼 수 있어 우리 기업들이 제 몫을 차지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없지 않다. 물론 늘 위기를 극복하면서 성공적인 투자를 해온 민간기업들이 잘 대처하겠지만 우려되는 점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지금까지 대형 투자는 자기자본보다 타인자본에 의존해 왔으며 적지 않은 대기업의 총수가 유고 상태인데 기업들이 적기에 과감하고 신속한 투자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의문이다.

여기에 공기업의 역할이 있다. 물론 공기업이 시장과 투자를 장악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고비마다 투자에 불을 붙이고 중소기업에 구매시장을 만들어주면서 고용을 유지하게 한 데에는 공기업의 역할이 매우 컸다. 특히 북한에 대한 인프라 투자는 해외 경험이 풍부하고 최상의 조건으로 해외 금융을 일으킬 수 있는 우리 공기업들이 물꼬를 틀 수 있으며 중소기업과의 동반 진출도 이끌 수 있다.

공기업이 이런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는 공기업에 부정적인 인식을 떨쳐내고 경영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투자 판단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공기업 대표를 경영인으로서 존중하고 공기업의 기(氣)를 살려 국가의 새로운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