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외부 자극
2000년대 초중반, 기업에서 모바일 사업팀장으로 일하던 필자는 모바일폰 플랫폼에 콘텐츠와 서비스를 올리기 위해 통신사업자 담당자를 설득하려고 무척이나 애썼다. 통신사업자가 서비스 결정권을 쥐고 있던, ‘닫힌 시장(close market)’ 일색이었던 국내 정보통신업계를 흔든 것은 애플의 아이폰이었다. 누구나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 올리고, 사고팔 수 있는 모델을 가졌던 아이폰은 순식간에 ‘열린 시장(open market)’으로 큰 흐름을 바꿔 놨다. 지금은 누구나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인공지능(AI)도 2년 전 불어 닥친 ‘알파고 쇼크’에서 비롯됐다. 전 국민이 알파고를 통해 AI가 무엇인지, 4차 산업혁명의 파급력이 어떤지를 알게 됐다.

차세대 인터넷이라 불리는 블록체인도 2007년부터 시작됐지만, 국민이 블록체인을 인식한 것은 작년 말부터 몰아친 ‘비트코인 쇼크’ 때문이었다. ‘알파고 쇼크’, ‘비트코인 쇼크’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는 새로운 서비스와 사회구조에 대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외부자극’을 통해 깨우치곤 한다.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던 보석 같은 혁신의 경쟁력과 능력을 스스로 알아채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뿌리 깊은 문제도 ‘내 탓’보다는 ‘남 탓’을 하며 해결하지 못했고, 아픈 상처도 스스로 치유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 항상 미국이나 일본 등 외부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바빴다.

정치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민심이 들끓고 온 나라가 들썩거려야 그제야 “아차!” 싶다. 외부의 이상 신호를 감지하기 전에 먼저 미래를 내다보고, 변화하는 국민 의식을 인지해 내부적으로 혁신하기가 쉽지 않다.

요동치는 야당 정치권에 대해 국민은 지방선거에서 형벌을 내렸다. 유례없이 강한 ‘외부 자극’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2016 총선, 2017 대선에서 이미 국민은 보수정당으로서 제 기능을 못하는 정치권에 회초리를 들었다. 하지만 2년 동안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골든타임을 놓쳤다. 필자를 포함해 ‘내 탓이오’라는 반성 없이, 내부 개혁과 혁신을 하지 못한 셈이다.

이제는 ‘반성, 희생, 애민’을 실현해야 한다. 각자 국민 속으로 묵묵히 들어가 진정성이 전달될 때까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말아야 한다. 행동만이 답이기 때문이다. 구성원 개개인의 혁신과 자성이 없는데 어떻게 그런 구성원이 모인 조직이 혁신을 이룰 것인가. ‘외부 자극’에 의존한 ‘혁신 흉내내기’로 보이게 된 처지를 극복하는 것만이 국민에게 보은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