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계 개편 없는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이 정책 실패를 불러올 ‘태풍의 눈’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이 이런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는 점이 주목된다(한경 5월4일자 A1, 3면 참조). 공공기관들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정규직이 누리는 기존 호봉제와 복지 혜택을 그대로 적용하다 보니 막대한 인건비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건비 상승 누적으로 정규직 전환 정책이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이런 우려가 나오는 것은 정부가 도입을 약속했던 임금체계 개편을 제대로 실행하지 않은 채 정규직 전환을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2020년까지 20만5000명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전환하겠다고 발표했고, 지난 3월 말까지 10만1000명의 전환이 이뤄졌다. 정부는 정규직 전환에 맞춰 전환 대상자에게 호봉제 대신 업무 평가 등에 따라 임금을 정하는 직무급제를 적용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정규직 전환 대상자에게 호봉제를 적용하면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는 우려가 제기된 데 따른 대책이었다. 직무급제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사항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부 중앙부처를 제외하고 대다수 기관은 여전히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에선 직무급제를 도입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 직무급제 도입에 대해 노조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서다.

노조가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앞으로도 정규직 전환은 직무급제 도입 없이 이뤄질 게 뻔하다. ‘전형적인 노조 눈치보기’라는 비판을 받아도 정부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다른 대선 공약인 ‘선거연령 만 18세 하향조정’이 개헌 불발로 관철되지 않자, 선거법을 바꿔서라도 추진하는 것과는 ‘딴판’이다. 또 다른 대선 공약인 군복무 단축, 근로시간 단축 등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호봉제를 유지한 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근로자들에게 지출되는 인건비가 2020년에만 2조원 더 늘어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고용 유연성은 차치하고 임금체계 개편마저 노조 눈치를 보느라 미룬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는다. 정부의 설명이 필요하다.